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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치우를 조상으로 모시겠다는 ‘역사병’

등록 2017-10-26 19:44수정 2017-10-26 20:38

치우, 오래된 역사병
김인희 지음/푸른역사·2만원

중국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치우’(蚩尤)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황제에 의해 제압당한” 존재다. 그런데 거의 전설 상의 존재인 이 치우를 두고, 중국과 중국의 소수민족인 먀오족, 그리고 한국에서 서로 “우리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인류학·고고학을 연구하는 김인희 박사는 최근 펴낸 책 <치우, 오래된 역사병>에서 치우를 통해 동아시아 각 나라에서 갈수록 과잉되어가는 역사의식을 점검한다. 역사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질병, 니체의 말을 빌려 지은이는 그것을 “역사병”이라 비판한다.

치우에 관한 최초 기록은 춘추시대 고문헌인 <상서> ‘여형’편에 나온다. 역사적 기록으로 그것을 읽어낼 때, ‘여형’편은 주나라와 남방 초나라의 대립을 전한다. 치우가 대변하는 초나라가 청동 원료의 확보를 통해 남방민족의 지도자가 됐고, 황제(皇帝)인 주나라 소왕이 이를 정벌했다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전국시대 문헌에서부터 황제(皇帝)가 전설적 존재인 황제(黃帝)로 바뀌고 치우를 ‘전쟁신’으로서 악마화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여기엔 한족의 통일된 시조를 만들기 위한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치우에 대한 해석은 나날이 복잡해져만 간다. 소수민족인 먀오족은 치우를 자신의 조상으로 끌어들여 고대사의 공백을 메꾸며 새롭게 민족사를 재구성했고, 이를 통해 중국의 중심민족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소수민족의 분열을 막고자 했던 중국에서는 90년대에 이르러 치우를 황제·염제와 함께 ‘중화민족’의 시조로 꼽는 ‘삼조문화론’이 제기됐다. 한국의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치우가 동이족’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받아들여 치우를 한국인의 조상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지은이는 치우에 얽힌 온갖 허구적 담론들을 깨뜨린 뒤, 이 같은 치우 ‘역사병’이 발발한 원인으로 1989년 톈안먼 사태를 지목한다. “중국 정부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민족주의 강화가 결국 다른 민족이 동일한 방식으로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국의 지식인들이 먼저 자국 내 역사 왜곡에 대해 지적하고 시정하려는 노력”을 요구한다. 고문헌 조사와 현장답사에서부터 현재 중국과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 재구성의 움직임들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지은이의 접근 태도가 특히 값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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