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규 지음/창비·8000원 박신규(사진)는 17년차 편집자다. 2001년 창비에 입사해 문학 분야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편집자문위원 직함으로 창비의 시 애플리케이션 ‘시요일’ 개발과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그는 편집 일을 하는 틈틈이 시를 썼고,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을 받았으며, 2010년 <문학동네>에 시를 발표하며 공식 등단했고, 마침내 첫 시집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를 펴냈다. “음지에서 일한다/ 국정원의 사정이 아니다/ 책상이 빨갛게 물든다”(‘노동시 혹은 에디터십’ 부분) 시집에는 <만인보> 전30권을 마감하느라 밤늦게까지 야근을 계속하던 이야기도 들었는데, 편집자의 일이라는 ‘그늘진 말’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이 시집이라 해도 좋겠다. 물론 시집 제목을 지을 때 시인의 의도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의도는 아마도 이런 시들에 담겼을 것이다. “그늘진 말들이 와서/ 가만히 안아주었네/ 빨리 늙고 싶은 마음들이 함께/ 차가운 맹지에 스며들었네/(…)/ 이미 전생에서 버림받은 말들로/ 사랑을 나누며 잠이 들었네/ 바람꽃 앞에 내던진 시간,/ 늘어진 속옷처럼 놓아버린 마음들이/ 꽃자리에 머물렀네”(‘삼십세’ 부분) “꽃보다 그늘이 아름답지/ 한밤중일수록 그늘은 더 환하지//(…)// 배고파 우는 무정한 그늘/ 텅 빈 흰 그늘”(‘나무수국’ 부분) “그늘진 말들”, “전생에서 버림받은 말들”을 보듬고 그 말들로 꽃을 피우려는 노자적 그늘의 세계관이 시집을 관류한다. 그런 시인이 상처와 죽음에 예민한 것은 당연한 노릇. 아니, 애초에 상처와 죽음이 그의 그늘의 시들을 낳았을 테다. “죽을 만큼 아팠다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너는 봄이다’)이나 “죽을 것 같은 고통만 남고/ 죽지 않았을 때 바다로 갔다”(‘눈길을 따라가다’) 같은 구절들은 그가 감당해야 했던 상처와 고통의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박신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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