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움직이지 마라 -질 들뢰즈와 생성변화의 철학
지바 마사야 지음, 김상운 옮김/바다출판사·2만5000원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철학자인 치바 마사야(39·사진)의 책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리츠메이칸대 첨단종합학술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인 치바는 미술, 문학, 음악, 패션, 팝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른바 ‘팝적인’ 철학자로 꼽힌다. 이번에 출간된 <너무 움직이지 마라>(2013)는 그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의 논의를 자기 방식대로 읽어낸 책으로 평가받는다.
먼저 지은이는 들뢰즈 철학과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이 일본에서 어떤 식으로 수용되어 왔는지 살핀다. 60년대 좌파 학생운동의 퇴조 이후, 일본 지성계에서는 “근대국가에 대한 반대”라는 차원으로 들뢰즈를 읽었다. <구조와 힘>(1983), <도주론>(1984) 등으로 주목을 받았던 아사다 아키라가 대표적 인물인데, 그는 ‘낡은 근대’로서 전체를 상상하는 망상증(파라노)과 이로부터 벗어나는 분열증(스키조)을 대응시켰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무엇보다 “특권적인 중심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규범적이지 않은 다른 식의 인생으로 생성변화하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철학자 지바 마사야. 사진 유키코 코시마, 출처 플리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좀 더 복잡하고 신중한 ‘들뢰즈론’을 내놓는다. 그는 “생성변화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다면 너무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들뢰즈의 잠언, ‘접속적’ 들뢰즈와 ‘절단적’ 들뢰즈의 구분, 그리고 데이비드 흄에 대한 들뢰즈의 연구 등에 관심을 기울인다. 접속적 들뢰즈의 배경이 ‘차이의 존재론’ 담론에 영향을 준 베르그송이라면, 절단적 들뢰즈의 배경은 ‘관계의 외재성’ 테제로 초기 들뢰즈에게 영향을 줬던 흄이다. 이를 통해 지은이는 접속을 통한 생성변화에만 주목한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들뢰즈로부터 “절단되면서도 재접속되는” ‘개체화’의 논의를 새로 발굴해낸다.
“생성변화하는 데 있어서 ‘너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과잉되게 자기 파괴하고 무수한 타자들로의 접속 과잉이 되며, 마침내 세계가 혼연일체가 되는 것을 막는 일이다. 비의미적 절단의 샤프한 선에 의해 접속의, 관계맺음의 과잉화에 제동을 건다. 이것은 관계의 외재성을 인정하는 것에 해당한다.”(제5장)
지은이는 들뢰즈를 ‘포스트구조주의’가 아닌 ‘포스트포스트구조주의’ 사상가로 일컬으며, “포스트포스트구조주의의 요체는 접속보다는 절단, 차이보다는 무관심(=무차별), 관계보다는 무관계”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들뢰즈가 말한 다른 것으로의 생성변화는 “제한 없이 엉망진창이 되라는 것, 곧 자타를 뒤죽박죽 섞어버려 하나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산산히 흩어진 세계에서 재접속을, 차이의 재긍정을, 다시 관계맺기를 모색하는 것이 포스트포스트구조주의의 또다른 일면”이라고도 말한다.
최원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