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2.0 -감정의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조지프 히스 지음, 김승진 옮김/이마·2만2000원
언젠가부터 감정, 공감, 직관 따위의 말들이 진보 좌파 진영의 주된 열쇳말로 떠올랐다. 간명한 정치 구호와 틀짜기(프레임)로 사람들의 가슴을 공략하는 데 앞서가는 보수 우파와의 경쟁에서 늘 뒤처지곤 했기 때문이다. 차갑고 까다로워, 배척당하곤 하는 ‘이성’을 내세워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반성과 함께였다. 그렇다면 ‘감정의 정치’는 과연 성공했을까? ‘탈진실’이 지배하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데 급급한 오늘날 정치판의 모습을 보면, 그리 성공적이진 않아 보인다. 되레 이제 주된 전선은 “좌파와 우파가 아니라 제정신인 정치와 정신 나간 정치” 사이에 그어진 듯하다. 2010년 미국에서는 극단적인 비정상에 대한 저항의 차원에서 ‘제정신 회복을 위한 집회’가 열렸을 정도다.
<혁명을 팝니다>(마티),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마티) 등으로 알려진 조지프 히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2014년 펴낸 <계몽주의 2.0>은 반지성주의, 반합리주의가 판치는 오늘날의 정치를 비판하고, 이에 맞선 새로운 ‘계몽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창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인간의 뇌와 정신, 진화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풍부한 사실들을 근거로 삼아, “이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실효성 있는 집합행동”을 고민한다.
2010년 미국 워싱턴디시에서 열린 ‘제정신 회복을 위한 집회’(Rally to Restore Sanity)에서 한 참가자가 “출처 바람”(Citation Needed)이라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출처 바람”은 인터넷 백과에 담긴 정보의 공신력이 의심될 경우 명확한 근거 자료를 요구할 때 쓰는 글귀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먼저 지은이는 과거 1세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상상한 것처럼 이성이란 게 인간 개개인의 뇌 ‘속’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 정신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시스템의 사고를 하는데, 하나는 직관과 경험에 기대는 시스템으로, 다른 이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처럼 빠르고 무의식적이며 암묵적으로 작동한다. 다른 하나는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시스템인데, 이것은 언어에 기대며 느리고 순차적으로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뇌는 애초 합리적 사고를 할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지과학의 여러 연구 성과들은 인간의 합리적 사고가 언어로부터 파생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진화의 노정에서 자연스럽게 획득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부자연스럽게 인간 정신에 장착된 것이란 얘기다. 인간이 느리고 까다로운 합리적 사고보다 빠르고 쉬운 각종 인지적 편향들에 끊임없이 이끌리고 시달리는 이유다.
2010년 미국 워싱턴디시에서 열린 ‘제정신 회복을 위한 집회’(Rally to Restore Sanity)에서 한 참가자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요구를 단순한 슬로건으로 압축할 수 없다고 밝히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때문에 인간 정신은 주변 환경을 조작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합리적 사고를 수행할 수 있다. 마치 적정 체온을 달성하기 위해 외부 환경을 ‘식민화’하는 도마뱀처럼, 인간은 환경을 이리저리 활용해서 사고를 더 잘할 수 있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이성이란 차라리 뇌 ‘밖’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변 환경을 보완물로 삼는 ‘환경적 스캐폴딩’, 기저의 문제를 고치지 않더라도 꼼수를 동원해 그 문제를 에둘러 돌아가는 해결책인 ‘클루지’ 등이 인간이 합리적 사고를 수행하는 데 중요한 이유다.
2010년 미국 워싱턴디시에서 열린 ‘제정신 집회’(Rally to Restore Sanity)의 포스터.
지은이는 애초 “역사적으로 합리주의는 좌파, 반합리주의는 우파”였다고 지적한다. 데이비드 흄, 에드먼드 버크, 니체, 마르틴 하이데거 등 합리성을 비판한 것은 주로 우파였다. 반면 혁명과 사회주의 운동은 대체로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삼았다. ‘좌파 반합리주의’가 부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볼 수 있듯 2차 대전과 냉전이었다. “좌파는 이성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이성의 우위를 위협하는 문화적 동학에 맞서 이성을 지켜내지도 못했을뿐더러, 많은 면에서 되레 이성의 쇠퇴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반면 보수 우파는 인간의 인지적 편향을 악용하는 반지성주의·반합리주의를 아예 전면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지은이는 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당선과 24시간 뉴스 채널 <시엔엔>(CNN)의 출범이 이러한 움직임, 곧 ‘상식 보수주의’의 시작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에 맞서 이성을 변호했어야 할 좌파마저 되레 공감, 감정 등에 치중하며 ‘맞불 작전’을 폈기 때문에 오늘날 전체적으로 ‘정신 나간’ 정치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된 비판이다.
감정의 정치가 아닌 이성의 정치를 역설하는 조지프 히스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 출처: 토론토대학 누리집
지은이는 가슴이 아닌 머리의 기능을 복구하는 새로운 계몽주의, 곧 ‘계몽주의 2.0’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계몽주의 2.0의 내용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 바로 ‘느린 정치’(슬로 폴리틱스)다. 진보적인 사회 변화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면밀한 조사와 계획, 타협과 신뢰에 기반한 집합행동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 나간’ 정치가 자극하는 각종 편향들에 휩쓸리지 말고, 느리고 까다롭더라도 숙의에 기반한 집단행동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만이 왕도라는 주장이다. 특히 지은이는 여러차례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과거 보수주의자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데, 그 핵심 메시지는 “여지껏 인간이 만들어온 시스템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의 뇌 ‘속’ 이성이 빚어낸 유토피아에 목을 매기보다는, 인간의 뇌 ‘밖’에 현존하는 사회 제도와 문화를 합리적 사고가 작동하게끔 돕는 ‘클루지’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