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촛불혁명’ 1년을 결산하는 내용의 <촛불혁명>(느린걸음)을 펴낸 김예슬씨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라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돌이켜보면, 제 20대는 분노와 슬픔이었습니다.”
지난해 불붙은 촛불집회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에 대한 총체적 저항이었다. 가장 민감했던 20대의 대부분을 이 시기에 보낸 젊은 세대들의 감각은 어떤 것일까? 지난 3일 서울 부암동 라카페갤러리에서 만난 김예슬(32·나눔문화 사무처장)씨는 ‘분노와 슬픔’이라 했다. 2010년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하고 고려대를 자퇴한 뒤 비영리단체 나눔문화에서 사회운동가로 살아온 그다. 그에게 ‘촛불’은 분노와 슬픔의 시간을 끝내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문을 열어젖힌, 말 그대로 ‘혁명’일 수밖에 없었다. 23주 동안 촛불집회 현장을 빠짐없이 지켰던 그는 최근 <촛불혁명>(느린걸음)이란 책을 썼다. ‘촛불혁명’의 전모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온갖 자료와 사진, 해설 등을 ‘집대성’한 책이다. 김씨를 비롯한 나눔문화 동료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열띠게 참여하고 기록하고 토론한 내용이 4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의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배어들었다고 한다.
‘대학 거부’ 선언 뒤 지난 7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자, 김씨는 그저 “잘 살았다”며 웃었다. 다양한 곳에 가서 사람을 만나고, 농사도 짓고, 사진도 찍고, 책도 만들고, 글도 쓰고, 전시를 기획하고…. “단지 ‘옳은 말’을 하기보단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도 했다. “많은 20대 청년들이 그랬듯, 대학을 거부하기 전까지 저 역시 뭘 해볼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미 설계된 삶의 체제를 벗어나니, 조금씩 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들을 찾아가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는 가운데 ‘촛불혁명’을 만난 것은 행운과도 같았다고 한다. “이렇게 대규모의, 장기간의, 다차원적인 사건이 여섯달에 걸쳐 진행되는데, 이 모든 과정을 현장에서 접할 수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 현장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담아놓기 위해 책을 만들게 됐습니다.”
먼저 김씨는 지난 촛불집회가 ‘혁명’이었다는 점을 조목조목 강조했다. 민중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국가권력을 무너뜨렸다는 점, 그리고 그 자리에 ‘촛불 정부’라는 새로운 정부를 민중의 손으로 세웠다는 점, 정권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바꿔나가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특히 그는 ‘폭력 없는 집회’라는 평가와 관련해, “100만의 평화 집회가 갖는 도덕적 위력은 직접 폭력이라는 물리적 위력을 압도하고도 남는” 거대한 힘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책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가장 뜨겁게 쓴 대목”이라고 했다.
김씨는 이번 촛불혁명이 낳은 가장 큰 유산으로 “‘하야 세대’라고도 할 수 있는, 새로운 ‘혁명 세대’가 탄생했다는 것”을 꼽았다. 대체로 10대인 이들은 “세월호 참사로 또래 친구들이 어이없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국정 역사교과서로 보수 정권의 역사관을 강요받아야 했으며, 정유라의 부정입학을 보며 출발부터 봉쇄된 자신의 미래에 좌절을 느껴야 했던” 세대다. 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스마트폰을 통해 금기나 경계가 없는 세계를 체득한 세대이기도 하다. 김씨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10대들은 누구보다도 명민하고 똑똑했다”며, “정의롭지 못한 것을 바로잡고 자기 삶의 결정권을 회복한 ‘혁명’의 경험이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나눔문화에서는 활동가들이 매번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에게 나눠줄 손팻말을 미리 제작했는데, 매주 손팻말에 어떤 말을 써넣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손팻말들을 모두 모아 보니, 촛불혁명이 어떤 흐름으로 진행됐는지 한눈에 보이더라고요.” 처음 ‘박근혜는 하야하라’로 시작한 손팻말 문구는, 23주 동안 ‘탄핵하라’, ‘구속하라’, ‘특검 연장’, ‘이재용 구속’, ‘세월호 진상규명’ 등을 거쳐 마지막에는 ‘이게 나라다’로 마무리됐다. “애초 세월호 참사로 불거졌던 ‘이게 나라냐’라는 절박한 물음이, 결국 ‘이게 나라다’란 답을 찾은 셈이죠.”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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