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의 관점에서 미국을 말하다
서보명 지음/아카넷·1만2800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던 ‘시골의 가난한 백인 남성’ 계층이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트럼프는 과거 어느 대통령 후보보다도 더 많은, 81%의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도 살펴봐야 한다. ‘시골의 가난한 백인 남성’은 대개 이 ‘복음주의 개신교도’이기도 한 것이다. 서보명 미국 시카고신학대학 교수는 최근 펴낸 책 <미국의 묵시록>에서 부제 그대로 “종말론의 관점에서 미국을 말한다.” 미국에 거주하면서 미국을 가까이 접한 지은이는 “청교도들이 시작한 미국의 실험은 신학적인 것이었고 구체적으론 종말론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때문에 미국의 역사, 정치와 종교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속에서는 종말을 예비하는 묵시록적 비전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도 않고, 전통적인 도덕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삶을 살았지만, 그는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이해했고 “기존의 윤리를 넘어서 묵시록의 결단을 요구하면서 대통령이 됐다.” 종종 대형 사건으로 연결되는 총기 문화는 대단히 미국적인 문화다. 미국 개척기에 청교도들이 광야의 적들에 대항하여 총으로 ‘신의 사명’을 실현한 역사는, 총에도 미국만의 묵시록적 사상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지은이는 잭슨 폴락과 잭 케루악, 심지어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문화에서도 묵시록을 발견해낸다. 미국에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고, 사형 제도를 고집하는 주정부도 아직 많다. 이는 단지 정치적 의미의 보수성만이 아닌, “죄에 대한 응징, 가혹한 형벌을 통해 죄를 씻는 용서의 구조”와 같은 종교적 측면을 함께 따져봐야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지은이는 “미국에선 최후의 제도이자 가장 앞선 정치제도인 민주주의 그 자체에 심판이라는 암시가 무의식 속에 작용한다”고까지 지적한다. 또 미국을 대표한다는 실용주의 사상마저도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진보적 노력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천년왕국설에 기대”어, 묵시록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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