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산을 넘어 발명으로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이성혁 옮김/갈무리·1만9000원 <부채인간>(2012), <기호와 기계>(2017) 등의 저작들로 국내에도 알려진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마우리치오 라차라토가 2004년에 펴냈던 <사건의 정치>가 번역 출간됐다. 현대 사상의 급진적인 정치성을 견인하려는 라차라토의 이론적·철학적 바탕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저작이다.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대항한 전세계적 항의운동이 배경이다. 지은이는 존재의 본성을 “사건으로서 정의하는 것”을 통해 ‘사건의 철학’을 펼친다. 이는 서구의 전통적 철학 흐름이 제시해온 ‘주체의 철학’과 대립한다. 주체의 철학이 동일성의 철학이라면, 사건의 철학은 차이의 철학이다. “사건에서 출발하여 구축된 문제는 처음부터 그 답을 문제 안에 포함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사건의 철학은 세계를 ‘가능태’로부터 ‘현실태’로 이행하는 문을 열게 해준다는 논지다. 지은이는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 이에 착안해 ‘차이’의 관념을 발전시킨 가브리엘 타르드의 ‘신모나돌로지’, 들뢰즈의 잠재성의 철학 등의 논의들을 재료로 삼아, 주체가 아닌 사건에 기반한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미디어와 교환수단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과거 공장노동으로부터 ‘뇌의 협동’을 통해 공통재를 생산하는 양식으로 크게 변했는데도, 자본이 이를 ‘포획’해 사적으로 전유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지은이가 주장하는 ‘사건의 정치’는, 결국 이 같은 자본의 ‘포획’을 벗겨내고 발명과 창조를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기획이다. 이를 위해선 ‘평등의 정치학’(자크 랑시에르)이 아닌, ‘차이의 정치학’이 필요하다 주장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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