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돈이 모이는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모종린 지음/다산북스·1만8000원 재화의 흐름을 다루는 경제학자의 눈에 일단 골목의 가치는 ‘상권’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경제 관련 연구소·카드회사 등이 집계한 연평균 신용카드 이용금액 증감률 등을 토대로 골목상권이 대로변상권·몰링상권(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보다 성장률이 높고, 지리적 확장 가능성도 크다고 평가한다. 지은이 역시 골목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골목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길 즐기고, 숨어 있는 맛집을 다니길 좋아하며, 좁다란 길에 드리운 빛의 명암을 느끼고 재미있는 가게 간판을 보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그는 골목길의 낭만 대신, ‘골목길 소비자’로서의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골목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곤란한 순간은 ‘우리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떠난 가게와 마주할 때”라면서도 “이 가게가 내일 없어질 수 있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순간을 즐기자 (…) 골목길 여행자에게 다행인 점은 골목길이란 돌고 돌아 떠나는 가게가 있으면 금세 새 가게가 생긴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다음’ 설립자인 이재웅의 소셜벤처투자기업 ‘소풍’이 자리 잡은 서울 성수동, <뉴욕타임스>가 추천한 부산의 테마여행, 소형건축예술을 설치하는 광주의 폴리사업, 한 동네에 4개의 미술관을 지은 제주 아라리오길을 비롯해 영국 에든버러·중국 상하이·일본 기치조지 등에 있는 이름난 골목길 상권을 돌아보며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나간다. 그가 찾아낸 성공한 골목길들은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갖추고, 창의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고숙련 자영업자가 다수 포진해 있으며, 세입자-건물주가 이해관계의 한 배를 탔다는 공동체 정신이 확립된 곳이다. 그의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최근 한국의 도시문제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인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트렌디하고 독창적인 가게·갤러리·카페·술집·공연장 등을 자랑하던 서울 삼청동, 홍대 앞 등은 10년도 안 돼 임대료 급등으로 인해 기존 가게들이 좀 더 집값이 싼 곳으로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개인이 선택한 결과로 발생한 골목길의 변화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유주의자가 골목길을 사랑하는 방식”이라면서 기존의 도시학자·사회학자와 다른 자세를 취한다. 그가 보기에 낡은 골목길 앞에 놓인 선택지는 고급화, 정체, 재개발 세 가지다. “낙후지역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계속 도태되거나 대규모 재개발 말곤 답이 없다”며 고급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을 흑백논리로 대하거나 이념에 치우쳐서 바라봐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그는 임대료 규제 등도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건물주가 단기 이익만 추구하지 말고 세입자와 협력하는 공동체 문화를 일구자고 한다. 골목길 활성화를 위해선 상업시설 유치는 정부의 역할이 아니라는 고정관념도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상권이 한번 뜨면 기존 세입자들을 밀어내는 폭력적인 현실에 비해 미진한 대응 방안으로 보인다. 부동산을 통한 사익 추구에 비해 도시의 공공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정부의 규제정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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