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경량화 추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모처럼 굵직한 대하소설이 나왔다.
작가 송은일(
사진)의 10권짜리 소설 <반야>(문이당)는 1980, 90년대에 붐을 이루다가 어느덧 맥이 끊긴 대하소설의 맥을 잇는 작품으로 주목된다. <반야>는 무녀(巫女) 반야를 주인공 삼아 조선 영조 시대의 권력 다툼과 시대상을 그린 소설. 작가는 2007년 두권짜리 장편으로 낸 바 있는 이 작품을 원고지 1만5천장 분량으로 크게 늘려 10년 만에 다시 선보였다.
“2007년에 두권으로 이 소설을 냈을 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주인공 반야의 입을 통해 얼추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5일 낮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송은일 작가는 “소설 속에서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놀 수 있는 만큼 놀다 보니 10권이 되더라”라며 “반야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멈추지만 언젠가 다시 이어 쓸지도 모르겠다”고 웃었다.
<반야>는 무녀 반야가 속한 비밀 조직 사신계와 그에 맞서는 또 다른 비밀 조직 만단사, 그리고 영조를 정점으로 하는 왕조 권력이 각축을 벌이는 모습을 통해 개인적 욕망과 좋은 세상을 향한 꿈의 충돌 양상을 그린 소설이다.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신계와 만단사는 각각 평등 세상과 권력 장악을 목표 삼아 현실 정치에 접근하며 그 과정에서 조직원끼리 살상도 서슴지 않는다. “태생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평등과 자유를 인생의 지표로 삼고 움직였던”(‘작가의 말’) 사신계와 그 핵심인 반야는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나중에 정조가 되는 이산을 보호하며 자신들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 반영하고자 한다. 반면 만단사령 이록은 자신이 폐조 광해군의 5대손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빼앗긴’ 임금 자리를 되찾고자 음모를 꾸미고 교묘하게 현실 정치에 개입한다. 왕권을 가운데 둔 두 세력 사이의 각축이 이 10권짜리 소설의 기둥을 이룬다.
“좋은 세상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그 지향을 꿈꾸는 가운데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다룬 소설이 <반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과거를 다룬 소설이지만, 두 시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소설 후반으로 가면서 나쁜 사람들을 잔인하게 처단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게 된 것은 최근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이 작가인 나를 자극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박경리의 <토지>(1994)와 최명희의 <혼불>(1996) 이후 여성 작가로서는 21년 만에 10권짜리 대하소설을 내놓은 송은일 작가는 “<반야>는 따뜻하면서 드라마적 재미도 아울러 갖춘 소설”이라며 “일단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하면 고요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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