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진짜’ 광기가 아쉬워

등록 2017-12-07 20:13수정 2017-12-07 20:35

교양과 광기의 일기
백민석 지음/한겨레출판·1만3000원

백민석(사진)은 지난해 7월 쿠바 여행기 <아바나의 시민들>을 낸 바 있다. 쿠바 수도 아바나를 다섯 지점으로 나누어 작가가 직접 찍은 해당 지역 사진들을 무작위로 배열하고 글을 곁들인 책이었다. 여행 순서에 따른 기행문과는 성격과 방식이 달랐던 셈이다.

새로 나온 그의 소설 <교양과 광기의 일기> 역시 쿠바 여행의 산물이라 할 법하다. 9월28일부터 12월23일까지 87일의 일기 형식인데, 주인공이 일본 도쿄를 거쳐 쿠바에 가서 머물다가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가는 여정을 담았다. 더 문제적인 것은 일기가 ‘두 벌’이라는 것. 제목처럼 ‘교양’과 ‘광기’의 일기가 책의 앞뒷면을 따라 펼쳐진다.

앞면 교양 일기의 필자는 작가 자신을 떠오르게 하는 현역 소설가로, 공식 업무차 쿠바에 온 인물이다. 그는 문화원과 한인 동포 모임에서 강연을 하고 방송 인터뷰 등 일정을 소화하는 한편 한국 출판사와 연락을 취하면서 책 출간 일정을 챙긴다. 그런 공식 업무 틈틈이 아바나 이곳저곳과 지방 도시를 여행하는 이야기가 그가 쓰는 일기의 대강을 이룬다.

광기의 일기 필자는 “전쟁놀이와 광란의 섹스를 좋아하는 10대 소년”이다. 그는 말하자면 교양 일기 필자의 어두운 반쪽, 체면과 사회적 평판보다는 내면의 본능과 욕망에 충실한 무의식적 자아라 할 수 있다. 교양 일기 필자가 지킬 박사라면 광기의 일기 필자는 하이드씨인 셈이다. 이 두 자아가 일기장의 앞면과 뒷면에 나란히 일기를 쓰는 게 소설의 형식이고, 책 편집 역시 홀수 페이지에는 교양 일기가, 짝수 페이지에는 광기 일기가 배치되어 있다.

교양 일기의 필자가 롤랑 바르트와 자크 데리다, 기 드보르, 수전 손택 같은 학자들의 책을 인용하며 중심에 관한 사유를 펼치고 한국 및 세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반면, 광기의 일기 필자는 수상쩍은 여자들과 어울리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만나며 야만적 폭력에 몸을 맡긴다. 광기의 일기 필자는 “내 앞면에 일기를 쓰는 백면서생”을 경멸하며 그의 생활방식과 도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필요한 순간 발기가 되지 않는 데에서 보듯 ‘교양’의 감시와 억압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그가 펼치는 ‘광기’란 그다지 요란하거나 과격해 보이지 않는다. 교양보다 광기 쪽의 ‘활약’에 기대를 걸었던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 아바나를 떠나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광기’가 “이 새로운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고 망쳐놓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린다”며 설레는데도 독자의 가슴이 덩달아 쿵쾅거리지 않는 것은 그런 실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 최재봉 기자,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