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유령들
황여정 지음/문학동네·1만2000원
황여정(사진)의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은 문학동네소설상과 문학동네작가상을 통합해 처음 시행한 5천만원 고료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다. 그에 못지 않게 관심을 끈 것은 수상자가 소설가 황석영과 홍희담의 딸이라는 사실이었다(<한겨레> 2017년 10월26일치 15면).
마침내 책으로 나온 <알제리의 유령들>은 역시 소설가 부모의 직·간접적 영향을 보여준다. 황석영과 홍희담은 사회적 현안에 적극 대응하는 작품 세계는 물론 문학 바깥의 직접적 참여와 행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그들의 딸인 황여정의 데뷔작 <알제리의 유령들>은 부모 세대가 온몸으로 통과해 온 80년대의 시대적 아픔을 자식 세대의 눈으로 재구성한다.
소설은 모두 4개 부로 이루어졌고 1, 2, 3부는 서로 다른 인물을 서술자로 내세운다. 4부 ‘남은 이야기’의 화자는 1부와 같은 율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율이 십대 초 소녀이던 시절부터 20년을 훌쩍 넘는 시간대에 걸쳐 있고, 각 부의 화자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어서 독자로서는 다소 혼란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 앞부분에서 수수께끼 같은 공백으로 남았던 것들이 뒤로 가면서 하나씩 해결되기 때문에 퍼즐을 맞추는 듯한 발견과 성취의 쾌감을 맛볼 수도 있겠다.
1부에서 핵심적인 사건은 율이 십대였을 때 아버지가 ‘책이 무섭다’며 집 안의 책이란 책은 교과서까지 모조리 불에 태워 없앴던 일이다. 분서가 있기 전에 아버지는 한동안 집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이것이 80년대 지식인 및 문화예술인 들이 연루된 시국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드러난다. 그 사건에는 율의 부모와 율의 동갑내기 남자친구인 징의 부모 역시 연루되었다. 어머니들끼리는 중학교 동창이고 아버지들끼리는 고교 동창이며 율의 어머니와 징의 아버지는 대학 연극 서클 동료이기도 한 두 집안은 일종의 공동체처럼 허물없이 넘나드는 사이인데, 사건이 있은 뒤로는 서로를 의심하고 저주하며 싸움을 일삼다가 결국 율의 어머니와 징의 아버지는 암으로 먼저 세상을 뜨기에 이른다.
율과 징의 부모를 망가뜨리고 그들 자식 세대의 성장기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 사건의 핵심에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이 있다. 아버지가 무서워한 책이란 바로 ‘알제리의 유령들’이었던 것. 마르크스가 알제리에서 요양 중이던 말년에 썼다는 이 작품은 멀쩡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파멸시키는 근거가 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인 것 같나? (…) 모든 이야기에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걸 보고 들어도 각자에게 들어보면 다들 다른 이야기를 하지.”
율이 삼촌이라 부르는, 부모들과 함께 사건에 연루되었던 연출가 탁오수는 마르크스 희곡과 그로 인한 사건의 진위 여부를 궁금해하는 청년 김철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숱한 이들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지난 시절에 대한 단죄이자, 문학과 소설에 관한 정의로도 읽힌다. 멀리 제주까지 자신을 찾아와 사실을 캐묻는 철수에게 탁오수는 또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다는 거, 알아내겠다는 거. 그게 바로 진실이네.”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출사표를 내던진 신인 작가 황여정의, 소설에 임하는 각오가 읽히는 발언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