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한국근현대음악사/노동은 지음/민속원·1만9000원
친일음악론/노동은 지음/민속원·2만9000원
관현악을 전공한 그가 ‘친일음악’이라는 낯선 세계로 다가간 것은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을 접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친일문학론>을 읽으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눈뜨게 된 그에게 ‘2차 충격’은 광주였다. 독재정권의 실체와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의 진실을 알게 된 그는 ‘한국음악의 정체성’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 1980년대 중반 ‘일본 정신과 굴절된 음악인의 허위의식’, ‘일제 때 음악인들 어떻게 동원했나’ 등의 글을 게재하며 그는 친일음악 연구에 본격적인 장을 열었다.
지난해 12월2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노동은 교수(중앙대)의 1주기를 맞아 그의 유작 모음이 나란히 출간됐다. <친일음악론>과 <인물로 본 한국근현대음악사>. 한국·중국·하와이·미국 등에 흩어져 있던 악보들을 모아 지난 8월 발간된 <항일음악 330곡집>까지 합치면, 친일과 항일이란 그의 연구 두 축이 세워진 셈이다. 지은이는 친일 음악인들의 허울을 걷어내고 역사를 바로잡자는 주장을 과감히 펼친 한편, 이토 히로부미를 쏜 뒤 뤼순 감옥에 갇힌 안중근 의사가 직접 작사·작곡한 옥중가를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하는 등 항일음악 발굴에도 힘썼다.
<친일음악론>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쌓여온 친일음악 연구의 성과를 살피고, 조선총독부의 음악통제정책과 이에 부역한 친일음악인·단체의 활동 실태, 왜색이 짙은 엔카류의 대중가요 문제, 안익태 등 만주국에서 활동한 한국 음악가들을 다룬다. 조선총독부는 보안법·집회취체령 등으로 음악회 자체를 통제했고, 한국의 민족 음악을 연주하면 불경죄로 다스렸다. 자의든 타의든 많은 음악인들은 군국주의에 복무했다. 홍난파·현제명 등 다수의 음악인들은 “음악보국운동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며 ‘공군의 노래’, ‘정의의 개가’, ‘후지산을 바라보며’ 등을 작곡했다. 비행기 소리를 듣고 아군과 적군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는 일본 해군의 요청으로, 전국 음악경연회에 성악·피아노·바이올린 부문에 더해 ‘음감’ 부문이 신설되는 등 음악은 전시체제에 철저히 이용됐다. 지은이는 음계·높이·길이·음세기·음빛깔·빠르기·박자 등 ‘음향적 재료’ 분석을 통해 ‘쎄쎄쎄~’, ‘여우야 여우야’처럼 한국의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우리 일상에 녹아 있는 식민 잔재 청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물로 본 한국근현대음악사>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남북한의 독재정권 등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에서 서로 엇갈린 선택을 한 음악인 10명의 삶을 담았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처형된 구한말 개화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양악 전공자인 이은돌, ‘흥사단가’를 지은 ‘민족음악가’로 잘못 알려졌던 친일 작곡가 홍난파, 예술적 재능이 넘쳤으나 일제강점기 내내 ‘침묵’으로 저항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에도 정권에 쓴소리를 마다않은 채동선, 프로코피예프·쇼스타코비치 등이 극찬했지만 북한의 남로당 숙청에 휘말려 주물공장 노동자로 전락했던 김순남, 나치체제 하에서 일본인 만주제국 외교관 집에서 기거하며 ‘만주환상곡’을 작곡한 에키타이 안(안익태), 중국과 한반도에서 민족독립을 위해 싸운 항일사회주의자 정율성 등이 소개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