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나는 이렇게 본다
이이화 지음. 길 펴냄. 1만8000원
이이화 지음. 길 펴냄. 1만8000원
역사학자 이이화가 <한국사, 나는 이렇게 본다>(길 펴냄)를 냈다. 무려 10년에 걸쳐 <한국사 이야기>(한길사) 22권을 완간했던 게 지난해 5월이다. 필생의 역작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역사 이야기는 더욱 켜켜이 쌓여 넘치는 듯하다. 그 뒤에도 <대접주 김인배, 동학농민혁명의 선두에 서다>(공저·푸른역사),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산처럼) 등의 단행본과 7권짜리 <만화 한국사이야기>(삼성출판사) 등을 펴냈다.
<한국사, 나는 이렇게 본다>가 탄생한 사연도 비슷하다. <한국사 이야기> 완간 직후부터 <경향신문>에 연재한 글이 이번에 책으로 나왔다. 특별히 이 책에는 대중교양 역사서라는 소개말이 붙는다. 역사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나 청소년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이야기다. 열심으로 읽고 쓰는 그의 손을 거쳐 역사는 누구나 건져 마실 수 있는 성찰의 샘물이 된다.
한국사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와 소재에서 글을 풀어내고 있다. 조선과 대한이라는 국호의 기원, 견훤과 궁예의 자취, 신라와 발해의 경쟁 등이 정치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태극기와 애국가의 유래, 조선시대의 금서 등은 문화사에 대한 갈증을 풀어준다. 곳곳에 배치한 작은 삽화같은 이야기의 재미도 쏠쏠하다. 가짜 족보를 만드는 법,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부정행위, 몸빼와 담배의 유래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일흔을 앞둔 노학자가 그저 심심풀이 읽을거리를 전하려고 이 책을 썼을 리 없다. <…나는 이렇게 본다>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책의 전반을 가로지르는 것은 오늘의 한국 사회와 잇닿는 과거의 역사를 하나의 관점에서 건져올리는 노력이다. 고려 공민왕, 조선 정조와 광해군 등의 개혁 시도에 대한 그의 시선은 애틋하다. 개혁의 좌절을 짚어가는 대목 곳곳이 오늘의 현실을 연상시킨다. 조일전쟁(임진왜란), 조청전쟁(병자호란) 등에 대한 세심한 서술은 21세기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하나의 경종이다.
특히 조청전쟁 당시 항전파(척화파)와 화의파(주화파)로 나뉘었던 흐름이 이후 주자학을 중심으로 한 노론과 양명학에 경도된 소론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19세기 척화와 개화의 논쟁으로 이어진 대목을 한두릅에 묶어 쓴 일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진보-보수 구도가 형해화되고 있지 않은지 묻고 있다.
그는 “저항사와 개혁사의 현대적 의미를 제일차적 화두로” 삼되, “진부한 거대담론보다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이 책은 균형잡힌 눈으로 함께 역사를 돌아보고 오늘을 깊이 고민해보자고 젊은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역사학자 이이화의 작은 프로포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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