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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상투적 가치 모두 헤쳐모여

등록 2005-11-24 20:08수정 2005-11-25 14:13

니체는 도덕적 편견의 기원을 논한 <도덕의 계보학>을 1887년에 발표했다. 그림은 그해 봄에 건강과 우울증이 악화된 니체가 머물렀던 스위스 쿠어의 모습. 당시에 그는 이곳의 날씨만큼이나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출처 <니체 읽기(니체전집)>(책세상 펴냄)에서.
니체는 도덕적 편견의 기원을 논한 <도덕의 계보학>을 1887년에 발표했다. 그림은 그해 봄에 건강과 우울증이 악화된 니체가 머물렀던 스위스 쿠어의 모습. 당시에 그는 이곳의 날씨만큼이나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출처 <니체 읽기(니체전집)>(책세상 펴냄)에서.
“우리는 자기자신을 알지 못한다” 선과 악은 어디서 왔는가 기독교적 질서 폭로 삶의 코드 해체 시도 “양심은 잔인성의 본능” 전복된 가설 끝없는 생각거리 던지며 ‘미완의 계보학’ 완성계

고전 다시읽기/니체 ‘도덕의 계보학’

19세기 후반의 유럽, 이 당시는 삶의 모든 영역들에서 대전환이 발생한 시대이다. 그 대전환의 시대를 철학화한 결정적인 인물인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가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개하고자 했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모든 저작들이 그렇듯이, 이 저작 역시 생경한 문제들, 개념들, 논리들로 가득 차 있으며, 거기에 니체 특유의 풍자와 아이러니, 비꼼, 반어 등이 겹쳐져서 독해하기 어려운 글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니체는 이 저작이 인간의 자기이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려는 이해의 역사에 속함을 분명히 한다.

여기에서의 자기이해란 무엇보다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들, 도덕들에 대한 이해이다. 니체는 이 이해들에 대해 이전의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급진적인 비판적 연구를 시도한다. 이 연구는 도덕 이론들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도덕 자체에 대한 연구, 도덕의 기원과 발생에 대한 연구이다. 파울 레의 <도덕적 감정의 발생>에 대한 ‘하나의 논박서’로서 씌어진 이 저작에서 니체는 기독교, 양심, 성직자 등에 대한 심리학적-철학적 비판을 가함으로써 근대 계몽사상을 완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미래에로 나아가는 사유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생경한 개념과 아이러니 넘쳐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삶에 부여하는 갖가지 기호들, 가치들, 제도들, … 이런 것들을 발가벗겨 놓았을 때 드러나는 세계, 그 무차이의 세계, <이방인>의 뫼르소가 보았던 그 세계, 이 세계에서 인간은 상투적인 가치들이 말하는 자기 자신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인간을 온전히 다시 이해할 필연성에 부딪치게 된다.

이 필연성은 부르주아 사회가 그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냈을 때 분명하게 출현했다. 즉 부르주아적 가치(오늘날까지 사회를,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해’ 말하는 존재들까지도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는 가치)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송두리째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상황을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을 통해 폭로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니체가 폭로한 것은 당시에 거대한 지배 권력으로 자리 잡아 가던 부르주아적 질서가 아니라 이미 사양길에 들어선 유대-기독교적 질서였다. 틀림없이 니체 사유의 큰 동기가 되었을 당대 사회에 대한 환멸이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기보다는 전통적 가치에 대한 전복이라 형태로 바뀌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기독교적 질서는 부르주아적 질서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우리가 니체를 맑스·엥겔스, 베버 등과 함께 읽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도덕의 계보학>은 ‘도덕적 편견의 기원’에 관한 저작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선악의 저편>을 잇고 있는 이 저작에서 니체는 “우리의 선과 악이 본래 어떤 기원을 갖는가 하는 물음 앞에” 멈추어선다. 니체는 ‘악의 기원’에 관한 관심이 어린 시절부터 줄곧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토로한다. 그 당시 그는 신을 악의 아버지로 파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저작에 이르러(물론 그 훨씬 이전부터) 니체는 악의 기원을 더 이상 세계 배후에서 찾지 않기에 이른다. 이제 니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조건 아래에서” 선과 악이라는 가치판단을 생각하게 되었는가를 탐구하기에 이른다.

계보학은 차이를 찾아내는 사유이다. 그것은 현재의 역사이다. 현재 우리를 지배하는 삶의 코드들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어떤 커다란 차이에 부딪칠 때 계보학적 작업은 활성화된다.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결혼식장에서 양복을 입기 시작했을까? 여자들이 언제부터 짧은 치마를 입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유행가에 ‘사랑’이라는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을까? 이런 자질구레한 기원들로부터 선악의 기원 같은 근본적인 기원에 이르기까지, 계보학은 역사 속에서 차이를, 문턱을, 지도리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차이를 가능케 한 조건들, 권력관계들, 상황들을 밝혀냄으로써 우리의 현재를 해체한다. 우리의 현재가 마치 자연과학 법칙들처럼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람들, 특정한 이데올로기, 특정한 권력관계, …의 조건들로부터 “탄생한 것”이라는 것, 이 점을 보여줌으로써 특정한 코드를 의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식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니체의 이런 사유는 푸코의 고고학/계보학과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통해서 발전되어 나가기에 이른다.

도덕적 편견의 기원에 관한 저작

니체가 가치판단들의 가치를 탐구한 것은 그것이 인간에게 “위기와 빈곤, 퇴화”를 주었는지 아니면 “삶의 충만함, 힘, 의미, 용기, 확신, 미래”를 주었는지를 밝히고자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책에서 니체가 안고 있는 문제는 ‘유럽 허무주의’의 문제이며, 더불어 “철학자들마저 휩쓸어 병들게 하는 동정의 도덕”인 것이다. 니체는 이것을 “유럽 문화의 가장 무서운 징후”로 파악한다. 감정의 허약화야말로 니체가 경고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저작에서 니체는 기독교에 대해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1부에서 니체는 귀족적 가치(이 때의 귀족이란 봉건사회의 귀족을 뜻하기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전사-‘영웅들’을 뜻한다)는 “고귀한=강력한”을 좋은 가치로, “비열한=무력한”을 나쁜 가치로 평가했음을 강조한다.(여기에서 최상의 가치는 용기다) 그러나 유대-기독교는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에 기대는 ‘원한’의 정신에서 탄생했으며 그로부터 현실적 쾌락을 악으로, 내세에 대한 믿음을 선으로 보는 가치관을 만들어냈다. 니체의 이런 판단은 추상적인 공간 속에서가 아니라 유럽 정신사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등장한 개념들 중 하나는 ‘양심’이다. 니체는 양심을 “밖으로 배출될 수 없을 때 안으로 방향을 돌리는 잔인성의 본능”으로 파악한다. 게다가 니체는 책임감, 정의, 기억 등도 이러한 양심을 보조하기 위해서 등장했다고 보았다. 니체는 여기에서 국가의 형성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인간 본능의 억압과 양심의 발생을 이와 연관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대부분 대담한 가설들로서 경험적 연구가 뒷받침되면서 새롭게 평가되기도 하고 기각되기도 할 것이다.

마지막 3부에서 니체는 성직자들의 금욕주의를 다룬다. 니체는 금욕주의를 해로운 이상, 종말에의 의지, 데카당스에의 의지라고 규정하면서도 왜 금욕주의가 사람들을 지배해 왔는가를 해명한다. 니체에게 사물들의 핵심은 힘에의 의지이다. 그러나 금욕주의 외에는 의지할 만한 다른 어떤 것도 없었다.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금욕주의는 승리하게 된다. 이제 니체는 저편 세계가 아닌 이편 세계에 주안점을 두는 사유를 전개하려 한다. 모든 가치들의 전환과 새로운 가치들의 창조, 여기에 니체 사유의 핵심이 있다.

니체는 이 책을 3부로 마감할 생각이 없었으며 계속 이어가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씌어진 3부만으로도 우리는 니체의 생각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금욕주의는 해로운 이상”

이정우/철학아케데미 대표
이정우/철학아케데미 대표
전체적으로 볼 때 <도덕의 계보학>은 독특한 내용과 새로운 가설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내용이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어서 정말 많은 사유를 요청하는 책이다.

니체가 전개하는 이야기들의 상당 부분이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들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의 가설이 과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의 사유가 니체의 이야기에 저항하도록 이미 코드화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니체의 생각이 서구라는 지역적 테두리 내에서 전개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니체의 사유 자체가 갖는 한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도덕의 계보학>은 극히 창조적이지만 아직은 거친 어떤 밑그림을 보여준다. 이 책은 어떤 완성된 사유를 우리 앞에 내놓기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사유하도록 끝없이 자극한다. 보다 포괄적이고 성숙하고 정치한 도덕의 계보학을 쓰도록 말이다.

서평자 추천 도서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책세상 펴냄(2002)

(새로 편집된 니체 전집을 한글로 옮긴 책세상 전집에 수록돼 있다)

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

김태현 옮김

청하 펴냄(1999)

(니체의 옛 판본을 번역. 그러나 <도덕의 계보학>의 경우 큰 차이는 없다)

니체와 철학

질 들뢰즈 지음, 이경실 옮김

민음사 펴냄(2001)

(니체의 사유를 가장 명료하고 창조적으로 해명한 저작)

50자 서평

◇ 송태효(48·고려대 레토릭연구소 연구교수) “오늘날 유럽문화가 철학적으로 견고하지 못하고 문화적으로도 후진적인 상태에 다가가고 있는 그 이유를 이미 <도덕의 계보>가 제시하고 있다. 존재론에 관한 물음의 상실을.”

◇ 엄정원(30·책세상 편집부) “우리를 길들여온 선과 악에 대한 니체의 무섭도록 철저한 뿌리 파헤치기. 자명하게 보이는 가치에 순응하거나 주눅 들지 말고 그것을 의심하고 직시하라는 니체의 전언에 고개를 끄덕인다.”

◇ 카를(알라딘 마이리뷰에서) “결국 목적점이 없어야만, 인간이 위대하지도 비참하지도 않아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에게 ‘위버멘쉬’(초인)란 이런 도덕적 체계를 벗어난 창조적 인간이다.”

▽ 다음주 이후 고전 <존재의 심리학>, <슬픈 열대>, <정신분석입문>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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