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인·이현범·전병찬 지음/시대의창·1만5000원 1990년대 중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뜻도 모호한 포스트모더니즘은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이후, 불현듯 닥친 1990년대를 방황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탈출구이자 세련된 신조류의 상징어로 인식됐다. 이 ‘포스트모던’을 기반으로, ‘민주 대 독재’라는 단순 구도는 90년대 이후 ‘문화의 시대’, ‘개인의 시대’, 그리고 ‘다양성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2017년 20대 청년 3명은 책 서문에서 “‘낡은 사고’는 바로 ‘포스트모던’”이라고 일갈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삶이 빠진 진보는 관조, 위선, 엘리트 의식으로 수렴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정치는 똑똑한 사람들의 ‘멋’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젊은 저자들은 상대주의와 다양성, 가치의 중립, 개인주의적 자유, 탈공동체화 등의 포스트모던에 대해 ‘겉으론 좋아 보이지만, 실제론 사회를 개인과 개인으로 끊임없이 파편화시키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변화를 가로막는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리버럴’로 표현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적 가치관과 양식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느냐, 그렇게 해서 바뀌겠느냐’고. 책 전반에 20대 청년들의 분노와 고민이 서려있다. 이 책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진보적 가치는 결국 공허한 외침일 뿐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준다. 이 책의 포스트모더니즘 인식, 그리고 진보에 대한 평가와 주장에 대해 모두 다 동의하진 못할지라도 새겨들을 내용이 많다. 진보적 가치도 어느새 ‘주류담론’으로 비판받는 시대가 됐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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