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벼운 것의 문명
질 리포베츠키 지음, 이재형 옮김/문예출판사·1만8000원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가벼움의 본능이야말로 삶의 가장 심오한 본능 중 하나”라고 말했을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인간은 가벼움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현대 소비사회는 정말로 가벼움이 중심이 되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질 리포베츠키 프랑스 그로노블대 교수(철학)는 저작 <가벼움의 시대>에서 “무거운 것에 대한 가벼운 것의 싸움이 현대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말한다. 대중문화에 관한 신선하고 도발적인 주장을 펴온 그는 이 책에서 몸에 대한 인식, 디지털 혁명, 소비 세계, 패션, 예술, 건축과 디자인, 정치와 교육 등의 분야를 넘나들며 가벼움에 대한 사유를 펼친다. 가벼움과 가벼움의 시대에 인류학·사회학적인 고찰이다. 지은이는 가벼움이 중심이 된 시대의 혜택과 유해성을 함께 조명한다. ‘무거운 것’과 싸워온 현대는 삶을 가볍게 한다는 것을 내세워 ‘하이퍼-소비사회’를 만들었지만, “가벼운 것의 문명이 가벼운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보다 존재의 고독이 불러일으키는 중압감이 더 클 수 있다. 곧 가벼운 장치들이 아무리 많아져도 시장의 메커니즘과 개인화의 역학이 계속해서 수많은 폐해를 만들어내는 역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등의 정치적 영역을 가벼움이란 열쇳말로 풀어내는 마지막장이 인상적이다. 지은이는 탈정치화 등 “가벼운 정치적 무게를 가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우리가 ‘하이퍼모던한 민주주의’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만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토대’의 문제가 또다른 무거움으로 우리의 삶을 억누를 수 있는 위험성을 함께 지적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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