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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중화사상’에 날린 통렬한 직설

등록 2018-01-11 19:20수정 2018-01-11 19:51

몽골 출신 일본 귀화 문화인류학자
유라시아 관점에서 새로 쓴 중국사
“중국 4000년사는 천진난만한 공상”
당·원·청 같은 포용으로 나아가야
반(反)중국역사―‘오랑캐’ 주변국 지식인이 쓴
양하이잉 지음, 우상규 옮김/살림·1만8000원

“황하 문명은 (…) 유일하게 중단된 적이 없는 문명이다. 현재 이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대 문명을 만든 후예이고, 이 지역 역시 동일한 문명이 진보·발전하여 지속돼 온 것이다. (…) 중화문명은 황하, 장강 유역에 정착하면서 오래전부터 농경생활을 해온 화하(화산·하수 지역의 통칭으로, 중국의 뿌리-편집자 주) 문명과 그 밖에 유목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민족의 문명을 포함하고 (…) 장기간의 교류 과정에서 한족을 중심으로 56개 민족이 다원일체의 구조를 형성했다.”

중국 베이징대 국학연구원이 2006년에 전4권으로 간행한 <중화문명사>의 맨 앞 ‘총서론’의 일부 대목이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가장 앞선 문명”이라고 믿고 가르치는 중화(中華)사상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하는 해석이다. 최근 국내에도 번역본이 나온 이 책은 황하문명을 아예 ‘중화문명’으로 고쳐 표현하면서 필요에 따라 ‘황하문명’을 병기했다.

18세기말 영국이 최초로 중국에 파견한 사절단의 일원으로 청나라를 방문한 영국 화가 윌리엄 알렉산더가 그린 ‘만리장성 부분도’. 몽골과 만주계 유목민들의 머리 매무새인 변발을 한 관리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출처 플리커
18세기말 영국이 최초로 중국에 파견한 사절단의 일원으로 청나라를 방문한 영국 화가 윌리엄 알렉산더가 그린 ‘만리장성 부분도’. 몽골과 만주계 유목민들의 머리 매무새인 변발을 한 관리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출처 플리커

이런 ‘자국 중심주의’ 중국사를 조목조목 통렬하게 논박하는 몽골 출신 문화인류학자의 책 <‘오랑캐’-주변국 지식인이 쓴 반(反)중국역사>가 나왔다. 양하이잉(53) 일본 시즈오카대 교수가 지난해 낸 책의 일본어 원제는 <역전(逆?)의 대중국사―유라시아의 시점에서>다. 한글판 제목이 너무 과감한가? 지은이의 주장과 표현은 과감함을 넘어 민감한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도발적이다. 책의 맨 첫 문장부터 “이른바 ‘중국사’에 대해, 몽골 출신인 나는 적지 않은 위화감을 느껴왔다”고 돌직구를 던진다.

“중국 4000년사는 중국인의 천진난만한 바람과 공상에 지나지 않으며, (…) 유라시아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중국사가 야만인으로 규정한 유목민이 동쪽으로는 시베리아에서 서쪽으로는 유럽까지 퍼지고, 문화적·인종적으로도 섞여 세계사를 움직여 왔던 반면, 한(漢) 문명이 퍼진 곳은 화북과 화중이라는 이른바 중원을 중심으로 한 로컬(지역)에 머물러 있었다.” 중원을 둘러싼 주변 사방을 오랑캐(동이·서융·남만·북적)로 일컬은 중화사상에 대한 통렬한 일격이다.

지은이는 나아가 “국민국가가 세워진 이후의 근대라면 모를까, 그 이전에 지나 지역이 어떤 특정 민족의 땅이었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으며, “한족 중심의 ‘중국사’는 자신들이 보편적이라고 믿는 세계관과 피해의식의 혼합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피해의식’은 19세기 이후 “천하(중화세계)의 외부에서 나타난 영국”과 “관심을 기울일 필요조차 느낀 적 없는 소국(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충격을 말한다. 일찍이 광활한 지역 수많은 방언에 구애받지 않고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 ‘한자’라는 표의문자와 넓은 영토, 많은 인구 등에 힘입어 앞선 문명을 이룬 중국으로선 “중화사상이 생각해온 세계질서를 뒤집는 경천동지할 사건”이었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진 왕조 때 진시황이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으려 축조하기 시작한 만리장성의 일부 모습. 출처 플리커
기원전 3세기 중국 진 왕조 때 진시황이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으려 축조하기 시작한 만리장성의 일부 모습. 출처 플리커

지은이의 문제의식은 “현재 중국에서 ‘한족 중심주의’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와, “그들이 한족이 아닌 ‘중화민족’을 표방하는 것은 몽골이나 티베트, 위구르 등 소수민족 문제를 고려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억지로 다른 개체를 포섭해 동화하려는 정책은 새로운 대립을 낳고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위 베이징대 학제간 연구팀이 편찬한 <중화문명사>의 서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은이는 국경 없는 초원지대에서 크고 작은 제국을 이뤘던 유라시아 각국의 수많은 자료와 문화인류학 및 고고학적 수단을 동원한 현장조사를 통해 “한족 중심주의가 아니라 이민족에 의한 국제주의로 통치된 시대야말로 ‘중국’이 가장 번창했던 시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했던 수와 당은 한족이 아닌 탁발·선비계의 나라였다. 실크로드로 번성한 “당이 국제적인 대제국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실력이 있으면 민족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등용하는 관용”이었다. “세계 최대의 제국이었던 몽골(원)은 지나의 왕조라기보다 몽골제국의 일부로 생각하는 게 실상에 가깝다. 청 역시 등 만주인 왕족이 몽골인과 함께 지나 지역을 통치한 유목민족이 세운 왕조였다.”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공자 시대의 복장을 한 단원들이 ‘문자’를 주제로 공연을 펼치고 있다. 황하 문명과 역사, 21세기 중화의 영광을 꿈꾸는 자신감을 한껏 과시하는 무대였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 자료사진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공자 시대의 복장을 한 단원들이 ‘문자’를 주제로 공연을 펼치고 있다. 황하 문명과 역사, 21세기 중화의 영광을 꿈꾸는 자신감을 한껏 과시하는 무대였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 자료사진

진시황이 흉노족 등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도 지은이의 눈에는 중화세계의 ‘폐쇄의 상징’일 뿐이다(지은이 자신이 흉노의 본거지였던 몽골 오르도스 출신이다). “흉노가 오르도스에 남긴 문화는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가장 유명한 기원전 3세기의 황금 왕관은 오늘날 중국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지은이는 “중화사상이 중국이 국제적으로 개방되고 한층 더 발전을 이룰 가능성을 묶는 족쇄”라고 단언한다. “중국이 21세기에 세계를 이끄는 대국이 되고자 한다면 과거 당·원·청같이 다른 민족, 다른 문화의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한족이 아닌 몽골 출신인데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뒤 일본 유학 도중 일본으로 귀화했고, 일본 학계의 시각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미뤄, 중화사상에 대한 역편향은 없을까? 뭐라 단언하긴 힘들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은이가 중국 남방계와 북방계뿐 아니라 광활한 유라시아 초원 지역의 다양한 민족과 언어, 혈연, 종교, 이동 경로와 역사 등 학술적 논거들을 꼼꼼히 거론하며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려 했다는 점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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