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 지음/글항아리·2만2000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제국의 영향력을 이처럼 간명하게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19세기 로마법학자 예링은 이를 “로마는 첫번째는 무력으로, 두번째는 그리스도교로, 세번째는 법으로 세계를 지배했다”고 표현했다. 제국은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아직도 그 흔적은 뚜렷이 남아 있다. 2000년 전 로마법은 지금도 세계인을 규율하는 체계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유럽법, 이른바 대륙법을 모태로 삼고 있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유럽법을 잉태한 정신과 문화의 궤적을 돌아보는 작업은 부족했다. 이 책은 고대 로마법에서부터 중세 교회법과 시민법,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보통법에 이르기까지 유럽법 체계가 완성돼 가는 과정을 통해 이를 두루 살펴본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1231년 시칠리아왕국 법령서에 처음 등장한 이 문구는 560년 후 프랑스 인권선언의 기초가 되고,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 11조1항(“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의 기원이 됐다. 한국 민법의 혼인·유언 제도, 민사소송 절차, 고리대금 금지 원칙의 뿌리는 교회법에 있다. 유럽 법제사 흐름을 좇아가면서 한국 법체계와의 연결고리까지 찾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으로 이름을 알린, 교회법의 본산이라 할 바티칸에서 다년간 라틴어 원전을 공부하며 법학박사와 로타 로마나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저자의 이력이 책 내용에 잘 묻어나 있다. 근거 자료 확보를 위해 유럽 현장답사를 곁들인 점도 평가할 만하다. 경어체 서술로 딱딱한 분위기를 눅이고, 핵심 문장을 굵은 활자로 처리해 전달력을 높이려 애썼다. 곽노필 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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