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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부족이 된 우리, 감정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을까

등록 2018-01-11 19:26수정 2018-01-11 20:17

프랑스 사회학자 마페졸리 주저
후기 근대를 ‘부족의 시대’로 파악
근대에 억압된 것들의 귀환
‘대중으로서의 민중’에 기대

부족의 시대-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쇠퇴
미셸 마페졸리 지음, 박정호·신지은 옮김/문학동네·2만2000원

서양의 근대는 합리적 개인주의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사회계약의 발견, 시민의 탄생, 대의민주주의의 이상 등 근대의 형상들은 모두 ‘합리적 개인’이라는 개념에 뿌리를 뒀다. 그렇다면 이른바 ‘후기 근대’로 접어드는 현대 사회에서 그 합리적 개인주의의 모습은 실제로 어떠한가?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거대한 대중의 ‘부글거림’ 속에서 우리는 과연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가? 개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되레 다양한 형태의 소속감을 근거로 삼고 있는 소집단들이 아닐까?

1990년대 이른바 ‘포스트모던’ 사회학의 새로운 기수로 떠올랐던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74)는 자신의 주저 <부족의 시대>에서 “확실한 것은 더이상 개인으로부터 사회적 삶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개인주의에 종언을 고하는 대신 그가 내놓은 개념은 ‘부족주의’다. 최근 들어 정보기술로 형성된 네트워크의 새로운 속성을 평가하거나 민족·인종·종교 등의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갈수록 심화되는 집단주의 경향을 비판할 때,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부족주의라는 말이 쓰인다. 그러나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98년 부족주의는 꽤 생소한 말과 개념이었다. 또 지은이는 단순히 단일한 정체성에 뿌리를 둔 집단화 경향을 지적하기 위해 이 말을 쓴 것은 아니었다. 2000년 쓴 제3판 서문에서 지은이는 자신의 사회학적 고찰을 외면한 채 이 말이 유행되는 현상을 비판하며 “외부의 용병들이 이 용어를 탈취해 갔다”고도 말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부족주의를 열쇳말로 삼아 포스트모던 시대를 읽어내는 등 도발적인 연구를 해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부족주의를 열쇳말로 삼아 포스트모던 시대를 읽어내는 등 도발적인 연구를 해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렇다면 지은이는 부족주의라는 은유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지은이는 자기 논지의 핵심이 “개인주의를 초과하는 사회적 형상을 지적하고 묘사하고 분석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서양 근대는 개인의 사회계약을 바탕으로 삼아 ‘사회적인 것’(Social)을 향해 나아가는 탈주술화 또는 합리화 과정을 한길로 밟아왔다지만, 지은이는 되레 소규모 사회집단의 발달, 집합적인 감정과 감성, 디오니소스적인 관능과 흥분, 무질서 등 그것과 어긋나는 일상 세계가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근대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탈주술화 과정에서 배제하고 억눌렀던 것들이 ‘재주술화’를 통해 회귀하고 있는 것이 후기 근대의 상황이라는 시각이다. 지은이는 개인과 조직·제도를 중심으로 삼는 ‘사회적인 것’과 구분되는, 사람과 부족을 중심으로 삼는 ‘사회성’(Sociality)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개인이 계약관계의 기능을 수행하는 항구적 정체성을 지녔다면, 사람은 정감적인 부족 안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보편주의의 이상을 끌어안았던 ‘사회적인 것’의 종말, 그리고 개인과 제도로부터 사람과 부족으로의 이행은 퇴행적이거나 비극적인 것으로만 여겨지기 쉽다. 실제로 최근 ‘부족주의’란 말이 주로 부정적으로 쓰이는 배경에는 집단화가 가져온 실질적인 야만과 공포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지은이는 “19세기의 주문을 중언부언 되풀이하기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시대에 다원주의, 수평적 네트워크, 감성적 연대, 촉각적 관계 등에 기반한 공동체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을 가능성까지 논한다. 개인으로부터 사람으로의 이행은 그동안 외면받았던 삶의 디오니소스적 에너지를 활성화시키고, 소속감을 모든 사회적 삶의 본질적 토대로 되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막스 베버의 ‘감정공동체’, ‘가치의 다신교’ 등의 개념을 검토하고 다문화주의, 근접성에 대해 깊은 논의를 펼치는 것은 이런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한 작업이다. “어쨌든 우리는 야만이 인간의 온기(溫氣)를 유발하는 계기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런 도발적 작업의 배경에는 서양 근대의 보편주의 이상이 그동안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왔던 ‘지금-여기’의 삶, 그리고 ‘대중으로서의 민중’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다. “대중으로서의 민중은 자신의 역사적이거나 사회적인 다양한 면모를 훨씬 뛰어넘은 자연적인 실체다”, “현대 소집단들의 네트워크 구축은 대중이 가진 창조성의 가장 완성된 표현이다” 등의 서술에서 이를 읽어낼 수 있다. 부족주의가 곧바로 집단 이기주의로 연결될 것이라는 선입견을 비판하며, “다양한 형태의 대중 속에는 사회 분석가들이 습관적으로 표명하는 동일성의 명령과 예측에서 벗어나는 수많은 소집단이 존재한다”고도 말한다. 이 같은 기대와 믿음은, 이상에 맞춰 삶의 세계를 재단하고 보편주의를 당위적인 것으로 설파해온 근대 특유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나온다. ‘제도화된 권력’과 ‘제도화하는 역능’의 이분법을 꾸준히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읽힌다. 권력 아래 놓인 민중은 늘 양면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들의 일상 세계 역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지만, 무엇보다 지은이는 “매일매일 죽음을 이겨내고” 있는 민중의 삶과 그 에너지에 경의를 표한다. “이 부글거림이 시대를 그토록 매력 있게 해주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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