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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패전 직후, 일본 지식인들은 어떤 반성문을 썼던가

등록 2018-01-11 19:26수정 2018-01-11 20:20

 
 
태평양전쟁사 1-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일본역사학연구회 지음, 아르고인문사회연구소 엮음/채륜·2만9000원
일본의 아시아 침략/고바야시 히데오 지음, 이정선 옮김/와이즈플랜·1만1000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새해를 맞이하여 “올해 개헌 논의를 심화하겠다”고 강하게 천명했다. 전쟁 책임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반성이 결여된 끊임없는 우경화의 흐름이 끝내 개헌이라는 일탈적인 목적지로 향해가는 모양새다.

최근 아르고(ARGO)인문사회연구소가 우리말로 옮겨 펴낸 <태평양전쟁사1>은 패전 직후 전쟁 책임에 대한 일본 내부의 인식이 오늘날 얼마나 멀리 그 경로를 일탈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1953~1954년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학 단체인 ‘역사학연구회’에 소속된 진보적 지식인들이 공동집필해 펴낸 이 시리즈는 태평양전쟁 전후 20~30년의 역사를 집대성했다. 패전 뒤 “전쟁의 참화가 일어난 근원을 역사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취지로 50여명의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해 공동연구를 했고, 그 결과물을 다섯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각각 1권과 2권에 해당하는데, 이번에 출간된 책은 이를 한 권으로 묶었다. 앞으로 진주만공격에서부터 패전까지 다룬 3~4권을 한 권으로, 전후 일본과 세계 정세를 마지막 권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패전 뒤인 1953년 첫 출간됐던 ‘태평양전쟁사’ 1권 초판본의 표지. 출처 야후재팬.
패전 뒤인 1953년 첫 출간됐던 ‘태평양전쟁사’ 1권 초판본의 표지. 출처 야후재팬.

도쿄대 사학과를 중심으로 모인 역사학연구회 연구자들은 전쟁 전부터 천황제와 침략전쟁, 파시즘에 일관되게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고,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아래 ‘유물사관’에 입각한 역사연구를 표방해왔다. 때문에 전쟁과 패전의 이유를 군부의 독주, 전략전술적 실패, 불리한 세계 정세 등 지엽적인 곳에서 찾지 않고, 세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모순에 의한 필연의 역사로 바라본다는 것이 특징이다. “근대 일본의 역사는 왜 전쟁과 침략으로 점철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천황제와 반(半)봉건적지주제, 그리고 이 두 가지와 깊이 결부된 특권적 대자본이 일본을 지배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을 끊임없는 전쟁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의 자본주의가 천황제를 매개로 삼아 반봉건적 지주제와 강고하게 결탁하고 있었던 구조에 대한 지적, 거시경제의 흐름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한 상세한 해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군국주의 파시즘을 부른 현상이 일본에서는 어떻게 전개됐는지에 대한 분석 등 깊이 있는 접근이 돋보인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결탁 등 전세계적인 차원까지 시야에 넣고, “천황제의 군국주의와 자본주의적 침략주의가 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했다”는 것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패전 직후였기 때문에 이런 분석이 가능했을 수 있으나, 서문에서 “철저하게 전쟁에 패한 지 8년이나 지났지만, 또다시 군국주의가 대대적으로 부활하여 고개를 들고 있다”, “하루 빨리 군국주의를 부활시킴으로써 미군의 선봉으로서 아시아를 다시 침략하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다” 등의 언급이 등장하는 것도 눈에 띈다. 서구 열강의 이해관계에 따른 전후 처리가 일본이 다시 우경화하는 싹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이미 지적했던 것이다.

일본의 경제학자 고바야시 히데오가 1998년 쓴 <일본의 아시아 침략>의 서문을 통해서도 전쟁에 대한 전후 일본 사회의 인식이 어땠는지 엿볼 수 있다. 지은이는 전후 일본의 태평양전쟁사에 대해 상반된 인식을 보여주는 두 책으로, ‘침략전’이라고 못박은 이노우에 기요시와 스즈키 마사시의 <일본근대사>(1955~1956)와 ‘해방전’이라고 주장한 하야시 후사오의 <대동아 전쟁 긍정론>(1964)를 대비시킨다. 이노우에 기요시는 <태평양전쟁사>의 전체 서문을 쓰고 편찬을 주도한 학자다. 지은이는 “당시 전쟁을 반성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강했는데, 하야시가 던진 돌이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당시 역사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고 대강 땜질해둔 결과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맥락을 읽을 수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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