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2차례 월간 잡지처럼 책을 펴내는 프로젝트 ‘월간 정여울’을 시작한 문학평론가 정여울. ⓒ이승원. 천년의상상 제공
한 작가가 1년 동안 12차례, 달마다 자기 이름을 달고 잡지처럼 책을 내는 색다른 도전에 나섰다. 마음이라는 대상에 주된 관심을 두고 웅숭깊은 글쓰기를 펼쳐온 문화평론가이자 작가인 정여울이 그 주인공. 달마다 손에 쥘 수 있는 종이책이 찾아오는 셈이니, 그 이름도 ‘월간 정여울’이다. 앞으로 12권으로 완결될 시리즈의 첫번째 책인 <똑똑―수줍은 마음이 당신의 삶에 노크하는 소리>(천년의상상)가 최근 출간됐다.
“항상 단정하고 정리된 편집으로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단행본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좀더 자유로운 나, 천방지축의 나, 파란만장한 나를 마치 바로 옆에서 말하듯이 들려주는 그런 책을 쓰고 싶었다.”(‘들어가는 말’)
작가 스스로는 이 같은 실험을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잉여라고 여겼던 것, ‘이것은 결코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수 없을 거야’라고 믿었던 생각의 조각, 책으로 출간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글 속에 또 다른 나의 진짜 모습이, 미처 보살피지 못한 제2의 자아가 숨어 있지 않을까.” ‘월간 정여울’에는 <보물섬> <샘터> 같은 과거 종이 잡지에 대한 노스탤지어, 종이를 통해 길고 천천히 이뤄지는 ‘아날로그적 소통’에 대한 갈구 등이 담겨 있다. 이미 주어진 딱딱한 틀과 흐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상처를 직시하면서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정여울 글이 지닌 힘은 여전하다.
‘월간 정여울’ 시리즈의 첫 권 <똑똑―수줍은 마음이 당신의 삶에 노크하는 소리>의 표지. 천년의상상 제공
첫 권 ‘똑똑’을 시작으로, 매달 의성어와 의태어를 제목과 주제로 삼는다는 콘셉트도 재미있다. ‘콜록콜록’, ‘까르륵까르륵’, ‘와르르’, ‘달그락달그락’, ‘옥신각신’, ‘어슬렁어슬렁’, ‘팔딱팔딱’, ‘와락’, ‘후드득후드득’, ‘덩실덩실’, ‘으라차차’ 등이 앞으로 달마다 찾아올 ‘월간 정여울’의 제목이다. 정 작가의 글쓰기 외에도 여러 다채로운 실험이 함께 뒤섞였다. 2017년 올해의 출판인 디자인 부문상을 받은 타이포그래퍼 심우진이 제목이 될 낱말들을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구현해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책의 안팎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그림. 12명의 개성 넘치는 화가가 매달 함께하기로 했는데, 1월 <똑똑>의 그림은 ‘꽃의 시간’을 그리는 화가 안진의가 맡았다.
‘월간 정여울’의 12권 제목은 모두 의성·의태어로 이뤄져 있다. 타이포그래퍼 심우진이 만든 제목 디자인. ⓒ심우진. 천년의상상 제공
이런 참신한 도전은 정 작가와 선완규 천년의상상 대표 두 사람의 오랜 ‘의기투합’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2000년대 한 인문학공동체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종이 잡지를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선 대표는 “지난해 정 작가에게 ‘한 작가가 월간 잡지처럼 글을 쓴다’는 콘셉트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는데, 정 작가가 듣자마자 ‘내가 해볼게요’ 말하더라”고 전했다. 언제나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해보려는 정 작가의 도전 정신과 신생 출판사의 참신한 기획 역량이 잘 어우러진 셈. 천년의상상은 올해 철학자 고병권이 마르크스의 <자본>을 자기만의 언어로 풀이한다는 콘셉트로, 또다른 기획인 ‘월간 자본’ 시리즈도 추진하고 있다.
출간 전에 ‘크라우드펀딩’으로 독자를 모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 진행했던 모금 프로젝트(www.tumblbug.com/1000sang)에는 모두 167명이 참여해 애초 목표액을 300% 뛰어넘는 1600여만원이 모였다. 정 작가의 인터뷰 영상과 ‘미리보기’ 등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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