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 글·그림/한겨레출판·1만3000원 김보통 작가의 에세이는 1인칭과 3인칭 사이의 어디쯤에서 기술된다. ‘나’로 시작되는 이야기들인데 남 이야기 하듯 한다. ‘할 수 없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채워졌던 유년의 기억을 솔직하게 적지만 자기연민이나 분노, 슬픔 같은 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옆집 형이 약간은 딱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주인공 소년의 분투기같은 느낌이다. “반에서 자기 이름을 못 쓰는 유일한 아이였고, 왼손잡이였으며, (…) 시시때때로 오줌을 싸고 드문드문 똥도 싸는 아이”라서 교탁 옆에 혼자 책상을 두고 ‘특별관리대상’으로 선생님의 구박을 받던 초등학교 1학년 때 이야기도 그렇다. ”특별히 괴로웠던 기억은 없”지만 친구들과 같이 간식을 나눠 먹지 못해 아쉬워하는 꼬마의 가여운 얼굴이 마음을 슬쩍 건드린다. 결핍으로 가득했던 옛날이야기지만 딱하기만 한건 아니다. “맥락없이 흘러갈 뿐”인 인생을 그저 살아가다 보면 작은 기적같은 순간들도 만난다. 이십대 시절 터키여행의 경험이 그렇다. 지도 위의 ‘샤프란 블루’라는 이름이 예뻐 무작정 찾아간 시골 마을에서 지은이는 그저 낯선 얼굴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기인처럼 마을 주민 전체의 환대를 받고 생전 처음 본 가족의 초대로 일주일간 귀한 대접을 받으며 함께 지냈다. 그는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그때의 풍경을 떠올린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그때를 생각하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전작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지금도 “쉽게 불행해지거나, 순순히 행복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속도로 삶을 지탱해나가는 것 같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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