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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내가 두고 온 글 속에 나는 살아 있어”

등록 2018-01-18 19:08수정 2018-01-18 19:53

 
 
당신의 아주 먼 섬/정미경 지음/문학동네·1만2000원
새벽까지 희미하게/정미경 지음/창비·1만3000원

지난해 세상을 뜬 소설가 정미경(사진)의 1주기(1월18일)에 즈음해 그의 유작 소설 둘이 출간되었다. 몇해 전에 써 두었으나 책으로 내지는 않았던 장편 <당신의 아주 먼 섬>, 그리고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발표한 마지막 단편 다섯을 묶은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가 그것이다. 둘 모두 작가의 부군인 화가 김병종 교수의 발문과 추모글이 ‘작가의 말’을 대신하고 있다.

“내 평생의 문학 동지이자 연인이었고 누이였으며 어머니였고 아내였던 여자”를 떠나보낸 지아비의 추모글은 절절하여 눈물겹다. 두사람은 대학 시절 한 잡지의 청탁으로 각자의 대학 캠퍼스를 무대로 쓴 소설이 인연이 되어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내 생애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고 김 교수는 썼거니와, 두사람은 그 뒤 결혼하기까지 2년 남짓 동안 400통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휴대전화나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었다.

“두 가지를 다 잘할 수 있을까요?” 처음 결혼 이야기가 나오던 날, 정미경이 던진 질문이다. 두 가지란 소설 쓰기와 주부의 일. 남편 김 교수에 따르면 고인은 그 두 가지 모두에 최선을 다했다. “(작가의 삶과 여염 여인의 삶이라는)두 시공간을 연약한 몸으로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살아냈다. 과부하가 걸린 채 강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며 그 두 차원의 시공간을 왕래한 것이다.”

정미경은 방배동 카페 골목의 반지하 원룸을 집필실 삼아 그곳으로 출퇴근하며 글을 썼다.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나를 파괴한다’라는 글귀를 벽에 붙여 놓고 자신을 닦달했다. 그가 세상을 뜬 뒤 집필실을 정리하던 남편 김 교수가 책더미 속 상자에서 발견한 것이 <당신의 아주 먼 섬> 원고 출력본이었다. 주로 도시나 이국을 배경 삼아 소설을 쓰던 정미경이 드물게도 남도의 한 작은 섬을 무대로 쓴 이 소설의 출발에는 남편의 채근도 한몫을 했다. “이 소설을 쓸 무렵부터 그녀의 몸이 급격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지난해 1월 타계한 소설가 정미경. 김병종 제공
지난해 1월 타계한 소설가 정미경. 김병종 제공

<당신의 아주 먼 섬>은 고향 섬을 떠나 예술가로 성공을 좇는 연수, 그런 연수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방황하는 딸 이우,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상태에서도 고향 섬의 소금 창고를 도서관으로 꾸밀 계획을 추진하는 연수의 어릴적 친구 정모, 소금 창고의 주인인 섬 유지의 아들 태원, 말 못하는 섬 소년 판도, 그리고 아들 셋을 모두 바다에 빼앗긴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한없이 따스하게 보듬는 ‘이삐 할미’ 등을 내세워 상실과 회복의 드라마를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의 핵심 주제는 “자본주의 소비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그 속에서 모색되는 존엄한 삶의 방식에 대한 물음”이라고 해설을 쓴 평론가 백지연은 설명했다. 2001년 등단 이후 정미경의 소설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의 연장이자 결산이라 하겠다. 그 소설 세계는 1년 전 이 무렵 문득 멈추었지만, 정미경이 남긴 소설은 남편을 비롯한 독자들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남편이 받아 적은 아내의 말이다.

“바보, 내가 그립고 보고 싶거든 내가 두고 온 글 속으로 들어와봐. 거기 내 숨소리와 눈길과 기침 소리 하나까지도 그대로 다 살아 있어. 조용히 그쪽으로 와봐. 나는 거기에 살아 있어. 떠나지 않았어.”

최재봉 기자, 사진 김병종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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