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영 채준우 지음/뜨인돌·1만5800원 유럽여행이라고 하면 흔하게 널린 여행기만큼 식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여행자’의 이야기라면 다르다. 100㎏이 넘는 전동휠체어를 탄 여자 윤영씨와 두 발로 걷는 비장애인 남자 준우씨 커플이 45일간 다녀온 유럽 배낭여행 기록에서, 휠체어의 시선에서 보는 색다른 유럽의 모습이 펼쳐진다. 윤영씨는 유럽에서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한다. 한국에서는 문밖으로 나가면 호기심과 친근함이라는 가면을 쓴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지만 런던에선 아무도 휠체어를 탄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자신감이 차오르는 짜릿한 기분을 맛봤다. 스위스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기차에 윤영씨를 태우기 위해 지게차가 동원된 기발함,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준우씨가 윤영씨를 안고 종탑의 좁은 계단을 올라갔던 로맨틱한 일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에서 세상 어느 안락의자보다 윤영씨에게 편안함을 선물했던 옥상 벤치. 휠체어 여행자가 겪는 에피소드는 익숙한 유럽을 또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한다. 여행기 중간 중간에 휠체어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꿀팁을 정리한 ‘휠링 가이드’ 코너도 있다. 장애인들에게 여행이 막연한 꿈이 아닌 현실이 되도록 도움을 주려고 한 저자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마냥 가이드북은 아니다. 이 커플은 여행을 하면서 남들처럼 다투고 화해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겪는다. 그러면서 서로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게 됐음을 수줍게 고백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말한다.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고.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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