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
투오마스 퀴뢰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세종서적·1만2800원
핀란드의 ‘투덜이 노인’ 그럼프가 한국을 찾는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 유학 와 있는 손녀의 안위가 걱정되어서였다.
“저녁때 서울 발 뉴스를 통해 커다란 엉덩이에 오렌지색 얼굴과 대걸레 머리를 한 양키 대통령이 뚱뚱한 소년과 하는 말다툼을 전해 들었다. 나는 화면에 대고 말다툼을 멈추라고 경고했다. 허풍쟁이들은 당장 사우나 뒤로 데리고 가서 주먹으로 정수리를 비벼주고 팔을 살짝 비틀어주고 일주일 동안 물과 맨밥만 먹여야 한다.”
? <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는 핀란드 작가 투오마스 퀴뢰(44)는 인기 시리즈 ‘괴짜 노인 그럼프’의 작가이기도 하다. 핀란드에서 50만부 넘게 팔렸고 2014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 시리즈다. 세종서적 제공
<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는 핀란드 작가 투오마스 퀴뢰(44)의 인기 시리즈 ‘괴짜 노인 그럼프’의 최신판. 핀란드에서 50만부 넘게 팔렸고 2014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 시리즈다. <한국에 온…>에서 그럼프는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에 앉게 된, 평창 동계 올림픽 관계자 ‘이 씨’의 주선으로 평창과 강릉의 올림픽 시설을 둘러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 소설이 되었다. 작가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시민과 올림픽 관계자 들을 인터뷰하고 소설 속 배경들을 답사했다.
“피겨 스케이팅 여자 선수는 언제나 아이스하키 선수보다 용감하다. 날씬한 피겨 선수는 헬멧도 무릎 보호대도 없이 아이스링크 가장자리를 향해 뒤로 미끄러져 가서 스케이트 날로 얼음을 찬다. 팽이처럼 세 번 돌고 얼음에 잠시 닿았다가 다시 세 번을 돈다.”
<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의 주인공이 강릉 빙상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포즈를 취했다. 세종서적 제공
소설에서 그럼프는 김연아 선수의 피겨 스케이팅을 눈앞에서 감상한다. 스키점프대를 답사하고, “핀란드 발효주 ‘낄유’ 맛이 나는 액체” 막걸리를 마시며, 남산과 광화문 등 서울 시내를 관광하기도 한다. 김치와 불고기, 라면 같은 낯선 음식을 접한 주인공의 반응,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방법을 몰라 당황해하는 장면 등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떠오르게도 한다.
그럼프가 서울과 평창, 강릉을 둘러보는 현재의 이야기는 동계 올림픽과 스키, 스케이팅의 역사에 얽힌 사건 및 인물 이야기와 갈마든다. 핀란드의 현대사와 그럼프의 개인사도 섞이면서 이야기의 두께를 더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손녀가 있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다.
<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의 주인공이 강릉 빙상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포즈를 취했다. 세종서적 제공
“이 나라 말을 할 줄 알고 젓가락질을 할 줄 알아도 하늘에서 중성자와 수소가 쏟아지면 젊은 여자가 감당하기는 힘들다. 손녀는 사람들이 결국 정신을 차릴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좋은 사람들이 나쁘고 어리석은 이들 때문에 도망칠 수는 없다고. 또한 아무도 다가올 올림픽을 망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올림픽은 항상 평화를 추구해 왔다고도 말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극적으로 바뀐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손녀의 ‘예언’은 행복한 놀라움을 선사한다. 물론 소설에서는 그럼프가 투덜이답지 않은 인내와 지혜로 한반도 평화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같은 북유럽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모험담에 비견될 그의 활약은 책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번역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로 잘 알려진 따루 살미넨이 맡았다.
최재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