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작가가 26일 친구 기형도 시인과의 추억을 담은 ‘세미 픽션’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를 쓰게 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기형도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그 자신도 젊어서부터 심한 고혈압이 있어서 자신은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늙고 병든 몸으로 구질구질하게 살아 있게 되는 데 대해 병적일 정도로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어요. 기형도의 사인은 급성 뇌졸중이었는데, 저는 형도가 그런 상태가 되도록 스스로 방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형도 시인(1960~1989)의 연세문학회 친구인 소설가 김태연씨가 기형도와의 추억을 그린 소설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휴먼앤북스)를 출간했다. 책을 내고 26일 낮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태연 작가는 “형도는 자신이 일찍 죽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친구를 만나더라도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나를 만나면 불행하게 된다’고 말하며 물러나곤 했다”고 말했다.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는 1979년 대학 신입생 때 연세문학회에서 기형도를 만난 이래 기형도가 죽기 불과 예닐곱 시간 전 마지막 통화를 하기까지 두사람의 우정과 교유를 통해 청년 기형도를 되살린 소설이다. 김태연 작가는 “내가 나오는 부분에는 약간의 허구를 가미했지만, 기형도 부분은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 그렸다”고 소개했다. 그는 “기형도가 실제로는 시보다 철학에 더 심취했었다는 사실은 연세문학회 사람들도 잘 모른다”며 “형도는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서양 철학에 심취했고, 편지를 쓸 때면 키르케고르와 쇼펜하우어 얘기를 빠뜨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형도의 시 가운데 ‘소리1’ ‘나무공’ ‘집시의 시집’ 같은 시는 니체의 영향을 짙게 보이는 작품들”이라며 “기형도의 시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이런 철학적 바탕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형도가 숨을 거둔 극장이 동성애자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는 점 때문에 그를 동성애자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그 극장에 형도를 처음 데려간 게 바로 접니다. 형도가 기자로서 취재 욕심도 있었고, 장기적으로는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 삼아서도 그 극장에 가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가기 어렵다며 저더러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결국 같이 가서 화장실에서 남자 동성애도 목격했고, 그 뒤로도 둘이서 왕왕 그곳을 출입했죠. 죽기 전 마지막 통화에서도 다음날 자정쯤 그 극장에서 보자고 약속을 했어요.”
김태연 작가는 “유족과 함께 기형도문학관 개관을 준비하느라 2016년 4월부터 형도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며 “이 ‘세미 픽션’을 통해 기형도에 관한 오해가 바로잡히고 독자들이 그의 인간과 문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태연 작가는 연세대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하고 국문학을 부전공했으며 1987년 장편 <폐쇄병동>이 문예지 공모에 당선해 등단한 뒤 장편 <그림 같은 시절> <반인간> 등과 수학소설 <이것이다> 등을 펴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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