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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유럽이 중국 역전한 이유… ‘문화적 신념’

등록 2018-03-01 19:51수정 2018-03-01 20:07

17세기까지 중국 문물이 유럽 앞서
영국 산업혁명이 ‘대분기’ 역전 계기
“자연을 지배할 의지와 능력” 주목
‘유럽중심주의’ 비판 회피할 논리 갖춰

성장의 문화-현대 경제의 지적 기원
조엘 모키르 지음, 김민주·이엽 옮김/에코리브르·3만6500원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중세를 근대로 전환시키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으로 인쇄술, 화약, 나침반을 꼽았다. 여기에 종이를 더하여 인류 문명의 4대 발명품이라고 꼽는 이들이 많다. 네 가지 모두 중국에서 발명한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서양과 마주한 중국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1842년 영국과 벌인 아편전쟁에서 상하이를 점령당하고 결국 난징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중국은 서양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생화학자이자 과학사가였던 조지프 니덤(1900~1995)은 중국의 과학기술사를 연구해, 고대와 중세 중국에서 일어난 발명과 발견이 유럽을 능가하고 있었음을 보여줬다. 니덤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이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중국의 과학 기술은 오래 전에 이미 높은 수준에 올랐는데, 왜 유럽에 뒤처지고 말았는가?’ 이른바 ‘니덤의 질문’이다.

중국 경제학자 린이푸는 1995년 ‘왜 산업혁명은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논문에서, 중국이 ‘경험에 기초한 기술 발명’으로부터 ‘과학과 결부된 실험에 기초한 기술혁신’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험에 기초한 기술 발명에서는 인구 규모가 발명의 속도를 좌우하는 까닭에 과거에는 중국이 앞설 수 있었지만, 유럽에서 17세기 과학혁명이 일어난 뒤에는 중국이 뒤처지게 됐다는 것이다. 린의 주장은 그렇게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미국의 중국사학자 케네스 포메란츠가 2000년 ‘중국과 유럽, 그리고 근대 세계 경제의 형성’이라는 부제가 달린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니덤의 질문은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대분기는 중국과 서양 사이에 생활 수준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을 말한다. 포메란츠는 대분기의 시점을 1750년대 중반쯤으로 본다. 그는 대분기의 이유로 ‘석탄’과 ‘신대륙 자원’ 확보라는 행운을 꼽는다. 영국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탄(노천탄광) 덕분에 증기기관의 발명 및 이용, 공업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신대륙의 원면, 설탕, 담배, 목재, 은을 확보함으로써 인구 증가에 따른 자원 압박을 극복하고 근대적인 경제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포메란츠는 서구 학계의 유럽 중심론에 대해 강력한 이의제기를 해온 ‘캘리포니아 학파’의 대표주자다.

제임스 에크포드 로더가 그린 <제임스 와트와 증기기관: 19세기의 여명>(1855년)은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기술인 증기기관을 만든 제임스 와트가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스코틀랜드 국립 박물관 소장
제임스 에크포드 로더가 그린 <제임스 와트와 증기기관: 19세기의 여명>(1855년)은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기술인 증기기관을 만든 제임스 와트가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스코틀랜드 국립 박물관 소장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조엘 모키르가 2016년에 쓴 <성장의 문화-현대 경제의 지적 기원>은 니덤의 질문에 대해 새롭게 야심찬 답변을 시도한 것이다. 이미 다른 책에서 유럽의 ‘계몽주의’를 19세기 경제성장의 가장 큰 추동력이라고 주장했던 모키르는 이 책에서 ‘위대한 풍요’의 원인으로 ‘문화의 차이’를 내건다. 그가 말하는 문화는 “유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전달되며,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공유하면서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신념, 가치, 선호의 집합체”다. 그는 “우리가 ‘위대한 풍요’라고 부르는 근대적 경제성장은 내가 생각하는 ‘문화’의 구성 요소인 신념, 가치, 그리고 선호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서 초래되었다”고 강조한다. 모키르는 “1830년 이후에 과학은 산업혁명의 지배적 원동력이 되었다”고 본다. 서양에서 근대적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폭발적 기술 진보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주목하는 것은 ‘자연 탐구를 권장하는 문화적 신념’이다. 그는 포메란츠가 대분기가 일어났다고 주장한 시점보다 한참 시간을 앞당겨 ‘근대 성장의 문화적 토대를 마련한 1500~1700년’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신뢰 같은 문화적 요인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모키르의 연구는 “자연에 대한 태도와 인간의 물질적 필요에 맞춰 자연을 지배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그것이 세계사의 흐름까지 바꿨다고 본다. 동서양이 분기하는 데 문화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캘리포니아 학파에 정면으로 맞서는 주장이다. “경제발전의 역사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용한 지식의 힘과 그 사회적 명성, 유용한 지식은 고결하다는 믿음이 등장해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물론 서양을 하나의 사회로 생각해선 안된다. 한 영역에서는 경쟁하고 다른 영역에서는 협력하는 이질적인 사회로 구성된 집합체이고, 근대 초기 유럽에서 계몽주의에 대한 기득권 반동세력의 저항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모키르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중국이 뒤처진 것이 아니라 유럽이 앞서나갔다’는 점이다. 중국이 못한 게 아니라, 유럽에서만 계몽주의로 이어진 지적 변화라는 일련의 특이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유럽의 선진 과학은 예수회를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었지만, (중국은) 달력을 수정하고 일식을 예측하는 것 말고 그들의 영향은 매우 선택적이고 극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완곡하게 “중국에는 잡다하고 자잘한 과학은 있었으나 진정한 과학은 없었다”는 중국학자 나탄 시빈의 말로 니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한다. 자신의 주장이 유럽중심주의, 서양우월론이라는 혐의를 피하려는 것인데, 모키르의 주장은 서양의 과학과 기술이 들어올 때조차 강하게 거부하고 깊은 잠에 빠져든 중국(또는 조선)의 사상적, 제도적, 문화적 흠을 따져묻는 것까지 막아주지는 못할 것같다.

근대적 경제 성장은 장수와 풍요, 여가를 즐기게 해준다는 점에서 축복이지만, 혼란과 환경 오염, 가공할 파괴를 가져왔다는 점에서는 저주이기도 하다. ‘축복과 저주가 함께 축적되고 있다’는 관점을 갖고 모키르를 읽기를 권한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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