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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과학전쟁’에 대한 브뤼노 라투르의 응답

등록 2018-03-08 19:58수정 2018-03-08 20:09

판도라의 희망-과학기술학의 참모습에 관한 에세이
브뤼노 라투르 지음, 장하원·홍성욱 옮김/휴머니스트·2만5000원

과학과 사회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하이브리드 지식인’으로서 큰 영향력을 발휘해온 브뤼노 라투르(71)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판도라의 희망>(1999)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가 기획한 ‘과학기술학(STS) 컬렉션’의 세번째 책으로 나왔다. 옮긴이 홍성욱·장하원의 말에 따르면, 라투르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저작으로 이 책을 꼽았다고 한다.

이 책은 1990년대 말 일어난 이른바 ‘과학전쟁’을 배경으로 쓰였다.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 ‘과학 지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취지의 ‘과학학’(science studies) 진영의 주장에 격렬하게 반응하며 이들을 ‘반(反)과학’이라 비난했는데, 대표적인 과학학자로 꼽혔던 라투르 역시 주된 비난의 대상이 됐다. 프랑스 출신으로 주로 프랑스어로 글을 써온 라투르는 이 책을 영어로 집필했는데, 이는 ‘과학전쟁’을 경험한 영미권 독자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옮긴이의 설명이다.

책은 라투르 본인이 어느 심리학자로부터 “당신은 실재를 믿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라투르는 그의 질문 속에서 ‘만약 이성이 지배하지 못한다면 대신 힘이 모든 것을 장악하리라’는 공포, 곧 순수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이 권력을 바탕으로 삼는 정치에 의해 오염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읽는다. 그는 이 상황을 그리스 고전 <고르기아스>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의 논쟁에 빗대면서, 대립 구도 자체가 잘못 짜여졌다고 지적한다. 지은이에게 과학은 단순히 변형이나 토론도 없이 단지 기계적으로 생성된 객관성을 전송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 탐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다. 지은이는 전자인 ‘대문자 과학’(Science)이 아니라, 후자인 ‘소문자 과학’(science)이야말로 과학적 탐구에 충실한 것이며, 그렇기에 과학학은 과학을 부정하는 반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친구라고 주장한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 출처 브뤼노 라투르 누리집.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 출처 브뤼노 라투르 누리집.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 사이에 벌어지는, 힘과 이성 사이의 극적인 대립 대신 아테나의 모든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3자 사이의 대화”로 그 핵심이 옮겨져야 한다. 그가 시종일관 지적하는 것은 과학과 정치가 각기 별도의 영역을 지닌다는 근대주의적인 합의다. 그런 이분법을 벗어나야만 더 새로운 과학, 더 새로운 정치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목이기도 한 ‘판도라의 희망’은 바로 그 가능성에 대한 기대다. 근대에 대한 비판적 접근, 과학과 사회의 관계,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가 함께하는 ‘집합체’에 대한 고찰 등 라투르의 다양한 사유의 실마리를 전반적으로 접할 수 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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