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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과학기술은 ‘과학대통령’의 것이 아니다

등록 2018-03-15 20:24수정 2018-03-15 20:30

‘과학대통령 박정희’ 신화를 넘어-과학과 권력, 그리고 국가
김태호 엮음, 김근배 외 지음/역사비평사·2만원

2009년 한국의 종합연구기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른바 ‘과학대통령’이라 불리는 ‘박정희 신화’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박정희 신화’가 드디어 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최고통치자가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해야 한다’는 신화는 과연 사라졌을까?

과학기술사 연구자들이 함께 쓴 <‘과학대통령 박정희’ 신화를 넘어>는 바로 이 대목을 지적하고 과학과 권력, 국가의 관계를 성찰하는 책이다. 엮은이인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조교수는 서문에서 “‘과학대통령’의 신화를 해체하고 박정희 시대의 과학기술을 역사화하는 것, 그럼으로써 과학기술사의 여러 주체들에게 합당한 제몫의 역사를 찾아주는 것은 박정희 시대의 온전한 극복을 위해 여러모로 필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1967년 열린 과학기술처 개청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판을 걸고 있는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누리집.
1967년 열린 과학기술처 개청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판을 걸고 있는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누리집.

김근배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총론격인 글에서 “박정희 정부 시기가 한국 과학기술 발전의 유일한, 혹은 결정적인 동인은 아니었다”고 지적하고, ‘최고통치차’의 구실을 절대화시키는 담론 자체에 비판의 칼날을 겨눈다. 1966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과 한일 수교에 대한 대가로 미국의 제안과 원조에 의해 세워졌다. 게다가 박정희 정부 시기의 과학기술 발전이 순기능만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최고통치자에게 과학기술의 성취를 몰아주는 것은 수많은 행위자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무시하는 왜곡된 담론이란 지적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사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최고통치자가 아닌 무엇에 주목해야 할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대 원장이었던 최재형의 ‘한국형 발전 모델’과 이를 떠받치는 정책론, 정부출연연구소의 설립과 확산 역사, 발전주의 국가모델을 배경에 깔고 실시된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 등 필자들은 촘촘한 역사적 맥락들을 냉정하게 톺아본다. 박정희가 1973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은 이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맹(과총) 등 과학기술자들이 요구해오던 사항이었고, 이들은 권력의 관심에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과학기술은 국가가 전방위적인 동원 체제를 만들고 개인의 삶 속에 침투해오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허울이기도 했다. 박정희 시대의 ‘쥐잡기 운동’에서 자연을 중심 표적으로 삼은 인간 권력의 본질을 짚어내고, 이를 정치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인간쥐’를 소탕하려던 당시 권력의 모습과 비교하는 대목 등도 흥미롭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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