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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기적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등록 2018-03-15 20:26수정 2018-03-15 20:33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지음, 이재경 옮김/미래인(2015)

내적 갈등이 커지면 나는 읽는다. 이왕이면 정신을 쏙 빼놓는 소설을 찾는다. 마치 어린이들이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는 기제와 비슷하다. 말하지 못하는 것을 대리 체험하는 식이다.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은 돈에 관한 책을 찾다 우연히 읽었다. 한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 쿡쿡 웃음이 났다. 흥미가 생기자 주인공 데미안의 입장에서 자신을 객관화하는 작업이 동시에 이뤄졌다. 그러자 그때까지 날 누르고 있던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졌다. 그래, 이런 맛에 읽는 것이다.

동화는 서로 다른 형과 동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형 안소니는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한다. 반면 동생 데미안은 모든 일에 수호성인을 연관시킨다. 집착의 근원은 아마도 돌연한 엄마의 죽음인 듯하다. 엄마가 저 높은, 좋은 곳에 갔고, 말 잘 듣고 착하게 굴어야 그곳에서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사람들이 말했으니까. 데미안은 작문 시간에 성인 이야기를 쓰고, 성인을 따라 묵언수행과 고행을 한다. 집 밖의 기찻길 옆에 상자로 성인처럼 은둔처를 만든다. 선생님과 아빠는 이런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고 걱정한다. 그날 저녁 참지 못한 데미안은 자신의 은둔처로 갔고, 거기서 성녀를 만난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뭔가가 은신처로 떨어졌다. 돈 가방이었다!

작가인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는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이 자국 화폐를 유로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고 상상을 했다. 만약 영국의 파운드가 유로로 바뀌고, 10여일 후에 파운드화가 폐기처분된다면 어떨까. 그런데 두 형제에게 4억원이 든 돈 가방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될까. 동화는 바로 이 설정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고 배길 수 있겠나.

놀라운 건 작가가 시나리오를 먼저 쓰고,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이를 소설로 다시 썼다는 점이다. 대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 간혹 영화가 인기를 얻자 책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 소설이 지닌 특유의 장점들인 묘사, 내면 심리, 문체 등이 빠진 스토리만 있는 허술한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한데 이 책은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다. 맙소사! 시나리오 작가가 쓴 작품이라 동화는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 시작은 독특하고, 사건은 차곡차곡 위기를 쌓아간다. 절정을 향해 작가가 깔아놓은 밑밥들이 탄탄하게 서사를 받쳐준다. 데미안이 상상 속에서 만나는 수호성인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한 연결고리다.

한데 작가는 왜 데미안에게 돈다발을 안겼을까. 데미안의 판타지 속에 베드로 성인이 나온다. 베드로는 자기 입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재해석한다. 자기만 먹고사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인심을 베푸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기적이 일어난 거라고 말한다. 기적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라고. 돈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고 읽었는데 실은 기적에 관한 이야기였다. 초등 5학년부터.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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