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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철학이 추방한 웃음, 사랑한 웃음

등록 2018-03-16 15:50수정 2018-03-16 15:56

웃음의 철학-서양 철학사 속 웃음의 계보학
만프레트 가이어 지음, 이재성 옮김/글항아리·1만8000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1980)은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연쇄살인사건과 ‘웃음’을 둘러싼 신학논쟁을 기둥 줄거리 삼아 지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궁 같은 장서관 밀실에 감춰진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 관련 필사본들이 화근이었다. 수행자들에게 웃음과 풍자는 해악이자 죄악이라고 여긴 호르헤 수사가 책장 귀퉁이마다 독극물을 발라놓은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은밀하게 ‘금단의 열매’를 탐했던 수도사들은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에코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웃음의 철학>은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인 지은이가 ‘서양 철학사 속 웃음의 계보학’(부제)을 탐구한 책이다. ‘웃음’의 의미와 유용성 여부는 오랜 옛날부터 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이자 논쟁거리였다. 플라톤은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물질의 세계를 벗어나 근원적이며 변하지 않는 이데아 왕국”을 추구했다. 그저 우스꽝스러울 뿐인 것들은 이데아의 엄숙함이나 정신적 깊이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더욱이, 스승 소크라테스가 오로지 선(善)을 향한 다이몬(내적 동기)을 따랐다가 70살에 신성모독죄로 사약을 받은 이후 플라톤은 웃음을 완전히 거뒀다.

헨드릭 테르브뤼헌의 '개와 함께 웃는 남자'.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키니코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미친 소크라테스'로 비유될 만큼 이성적인 기인이었다. 글항아리 제공
헨드릭 테르브뤼헌의 '개와 함께 웃는 남자'.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키니코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미친 소크라테스'로 비유될 만큼 이성적인 기인이었다. 글항아리 제공
반면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이 인간의 본성이며 동물과 달리 인간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면 결코 하찮거나 철학적으로 무의미하지 않다고 봤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교의 덕’ 중 하나로 “농담할 줄 알고 웃을 수 있는 능력”을 꼽았고, <시학>에선 “유쾌함의 경계를 넘지 않는 좋은 희극의 성공 비결”을 논했다. 플라톤의 관념론과 정반대로 물질에 주목한 동시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농담과 사색과 고독을 함께 즐길 줄 알았다. 그는 언제든 농담하며 웃을 준비가 돼 있는 쾌활한 사람이었으며, 강단철학자들을 겨냥해 “바보들만 삶에 대한 기쁨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의 별명이 ‘발광한 소크라테스’였다.

1000년이나 지속한 서양 중세 기독교 문화에서도 진리와 선함에 어울리는 표현은 경직된 엄숙함이었다. 그러나 “후기 중세에 이르러 해학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환기되면서, 새로운 인문주의의 조명 아래 웃는 철학자에 대한 신화가 부활했다.”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에서 “벌을 받지 않고 인간의 삶을 조롱”하는 예술가의 특권을 옹호했다. 얼음 같은 이성과 비판철학 탓에 재미라곤 없을 것 같은 18세기 철학자 칸트는 <인간학 강의>에서 “진지함과 위엄은 인간의 본성이 아닌 듯하다. 재치 있는 사람은 주변의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며 사랑받는다”고 썼다. 다른 저작에선 “지성은 숭고하고 위트는 아름답다”고도 했다. 그가 “(웃음은) 횡격막이 진동하는 기계적인 신체적 사건, (…) 톱질이나 승마보다 좋은 운동”이라고 한 것은 ‘칸트’답다.

라퐁텐의 우화 '데모크리토스와 압델라 사람들'에 실린 그랑빌의 판화. 엄숙한 이데아를 추구한 철학자 플라톤은 만물의 근원이 원자와 공허라고 주장하며 웃음을 즐긴 동시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를 애써 외면하려 했다. 글항아리 제공
라퐁텐의 우화 '데모크리토스와 압델라 사람들'에 실린 그랑빌의 판화. 엄숙한 이데아를 추구한 철학자 플라톤은 만물의 근원이 원자와 공허라고 주장하며 웃음을 즐긴 동시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를 애써 외면하려 했다. 글항아리 제공
데카르트는 조롱과 조소는 “증오가 섞여 있는 통쾌함”에서 나온다고 봤고, 보들레르는 웃음이 “자신의 우월감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는 매우 악마적인 생각”이라고 경계했다. 쇼펜하우어는 위트와 어리석음이 폭소를 터뜨리는 이유를 “생동적인 직관과 인식하는 지성 사이의 각축”에서 찾았으며, 프로이트는 ‘긴장의 배설에 따른 쾌감’에 주목했다. 19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흔히 사유는 풍자와 유머보다 높이 평가된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우스운 것에 대한 의미를 전혀 모르는 사상가에 의해 내려진다.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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