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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그 한마디에 조국 비극 담았죠”

등록 2018-03-28 05:00

-인터뷰/소설가 에카 쿠르니아완-
인니 문화 그린 ‘호랑이 남자’
한강과 ‘맨부커상’ 놓고 경합

미모의 여성과 네 딸 삶 통해
비극적 인니 현대사 녹여낸
‘아름다운 그것은 상처’ 국내 출간

악령 출몰·절세미녀·성행위 묘사
“어려서 읽은 호러·로맨스 영향”
‘마술적 사실주의’ 평가 받기도”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를 쓴 인도네시아 소설가 에카 쿠르니아완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3층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를 쓴 인도네시아 소설가 에카 쿠르니아완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3층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살아 있는 인도네시아 작가 중 가장 독창적(…), 예기치 못한 운석처럼 등장했다.”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학과 매체의 역할을 탐구한 역저 <상상의 공동체>의 지은이 베네딕트 앤더슨이 이렇게 상찬한 작가가 있다. 첫 두 장편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2002)와 <호랑이 남자>(2005)가 2015년에 영어로 번역 출간되면서 일약 세계적 유명세를 타게 된 에카 쿠르니아완(43)이 그다. <호랑이 남자> 영역본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수상한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임흥순의 영상전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과 연계해 마련한 심포지엄 ‘기억의 서사’에 발표자로 참석차 방한한 에카 쿠르니아완을 2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와 <호랑이 남자>는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 인도네시아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하기도 하지만 약간 다릅니다. <아름다움…>이 식민 시기부터 근현대까지 인도네시아 역사를 다룬 서사적 소설이라면, <호랑이 남자>는 한 가족으로 범주를 좁혀 일상 속에서 인도네시아 문화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죠.”

지난해 12월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박소현 옮김)는 일본군 위안부를 거쳐 성매매를 하게 된 미모의 네델란드 혼혈 여성 데위 아유와 그의 네 딸, 그리고 그들의 남성 동반자들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격랑과 파고를 그린다. 21년 동안 죽어 있던 데위 아유가 무덤에서 되살아나는 첫 장면을 비롯해, 귀신과 악령이 출몰하고 설화적 미모와 비(B)급 영화에서 볼 법한 성행위 묘사가 나오는 이 소설을 두고 서구 언론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대적할 만한 마술적 사실주의”(<인디펜던트>)라는 식의 평을 했다.

“제 소설을 두고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말하는 데 대해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책 홍보에는 좋은 역할을 할 테니까요.(웃음) 젊은 시절부터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작품을 많이 접했어요. 그 지역 정치 상황이 인도네시아와 비슷한 점도 있구요. 물론 두 지역은 종교를 비롯해 차이도 있지만, 식민 지배와 군사정권 등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에카 쿠르니아완은 인도네시아의 대문호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의 ‘부루 4부작’을 읽고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이라는 논문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베네딕트 앤더슨은 한국어판 <호랑이 남자>에 붙인 발문에서 에카의 소설 <아름다움…>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프라무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비판에서 나왔으며, (…) ‘부루 4부작’에 대한 도전이었을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에카는 “내 소설은 정치적 참여를 염두에 두고 있긴 하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에는 예수나 체 게바라 같은 비극적 영웅이 등장하지만, 내 소설은 그런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며, 내가 소설에서 즐겨 쓰는 귀신과 환상적 요소를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는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름다움…>의 주인공 데위 아유와 그 딸들이 ‘절세의 미녀’로 그려지고 그들의 성행위 묘사가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하며 때로 남성의 관음증적 시각을 보인다는 점에 어떤 독자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이에 대해 에카는 “인도네시아 독자들이 이 소설의 정치적 메시지에 치중하는 데 반해 주로 서구 독자들이 그런 식의 불편함을 호소한다”며 “과도한 미모와 성행위 묘사는 호러나 로맨스 등 내가 어려서부터 즐겨 읽은 장르물들의 영향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아름다움…>의 마지막 장면에서 데위 아유가 죽기 직전에 낳은, 네번째이자 마지막 딸 잔틱(‘아름다움’이라는 뜻)은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왜 못생긴 나를 사랑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가 이런 대답을 듣는다.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니까.” 소설 제목으로 쓰인 이 구절은 “인도네시아와 그 역사에 대한 메타포이자 상징이기도 하다”고 에카는 설명했다. “인도네시아는 매우 아름다운 나라이지만 동시에 그 아름다움 때문에 역사적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움과 추함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우리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을 소설 제목에 담았어요.”

에카는 “많은 이들이 추천을 한데다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와 개인적 친분도 있어서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는 상을 받기 1년 전에 영역본으로 읽고 카프카 소설에 견주는 서평을 쓰기도 했다”며 “그밖에는 한유주의 단편 하나를 역시 영어로 읽은 것 외에 한국 소설에는 문외한이지만, 박찬욱과 김기덕 등의 영화는 흥미롭게 본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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