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제작소 기획, 김민아·황세원 등 지음/서해문집·1만5000원 ‘공시생’이 50만명,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300대 1인 나라. 취직이 됐다고 하면 “정규직이니?”라는 물음이 어김없이 돌아오는 나라. 좋은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요구와 강박에 시달리는 20~30대들은 “우리에게 잠재력 대신 잠과 재력을 달라”고 외친다. 민간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가 기획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노동자로서의 존엄성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no grace, no job) 한국 젊은이들의 비참한 노동 현실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노무사(김민아)·문화평론가(최태섭)·협동조합 전문가(주수원)·기자(송지혜)·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 연구자(김빛나)·기자 출신 연구원(황세원)·복수의 조직에서 동시에 일하고 있는 ‘프로N잡러’(홍진아), 다양한 노동 경험을 바탕으로 ‘일’을 공부하는 대학원생(김정민) 등 8명이 모여 ‘대화법’을 통해 답답한 현실의 출구를 찾아 나간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의 시작은 2030세대에게 ‘좋은 일자리’란 과연 무엇인가다. 연구자들은 2030세대가 고민의 실마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아낸다는 점에서 부모 세대와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연봉이 높은가, 정년보장이 되는가보다는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관심이 꽂혀 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네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라’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젊은이들 대부분이 ‘가치 지향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직급이 낮더라도 정년과 연금이 보장된 공무원을 원한다. 곧, 하고 싶은 일과 안정된 직업 사이에 혼란이 크다는 것이다. 중요한 대목은 2030세대들이 생각하는 안정된 일자리가 반드시 65살까지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젊은이들은 일생에 두세개 정도의 직업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조직으로부터 보호받고 싶다기보다는 나의 생활이 계속 안정될 수 있는가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자리 창출과 함께 기본소득 도입, 4대보험 확대 등 복지제도의 전면적 개편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공정한 선발”과 “합리적 조직 문화” 역시 절실한 문제다. “민간부문에서도 공정한 선발이 보장된다면 공무원 시험으로 쏠리는 현상이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을 것”이고, 회사 조직에서의 일상적 관계가 민주성을 담보한다면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젊은이들의 ‘허기’는 한결 줄어들 것이다. 거듭된 고민을 거쳐 대담 참가자들이 내린 처방은 8가지에 이른다. 채용 공고에 정확한 정보 기재를 의무화할 것, 총량근무제·안식월·탄력근무 등 다양한 노동시간 제도를 확산할 것, 프리랜서 적정 대우 등 일하는 사람 관점에서 유연성을 확대할 것, 조직 내 민주주의를 강화할 것, 초·중·고에서 노동권 교육을 강화할 것,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노동권 교육을 실시할 것, 산별노조 강화 등 사각지대 노동자를 보호할 것, 전반적 임금수준을 높일 것 등이다. 2030세대는 정서적인 결핍감도 심하다. 대다수가 “조직에서 환대를 받아본 경험”, “확실한 소속감 속에서 성장해본 경험”, “서로 챙겨주는 동료와 선후배들”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이들이 ‘좋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낡은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은 선배 세대들의 몫일 터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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