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달콤한책·1만2000원
마리암 마지디(사진)는 1980년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나 1986년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지난해 공쿠르 신인상을 받은 그의 첫 소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모어인 페르시아어와 뒤늦게 습득한 프랑스어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작품이다.
공산주의자였던 마지디의 부모는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뒤 신정국가가 된 이란에서 성속 분리와 정치·사회적 자유를 위한 지하 활동을 벌이다가 결국 망명을 택한다. 살던 집 정원에, 부모는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묻고 어린 마지디는 아끼는 인형과 장난감을 묻는 장면은 ‘마르크스와 인형’이라는 이 소설 원제로 이어진다.
“아이는 맹세한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이 모든 걸 전부 다시 파내겠다고. 나중에, 그럴 수 있을 때가 오면.”
소중한 것들이 묻힌 정원을 보며 어린 마지디는 이렇게 다짐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7년 뒤에 그는 테헤란 고향 집이 있던 동네에 다시 가보지만, 집은 없어지고 동네는 완전히 모습이 바뀌었다. 부모의 책과 자신의 인형을 파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다시 14년이 지나서 낸 책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을 통해 마지디는 어릴적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렇게 떠나와 정착한 프랑스의 삶은 혼란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 속에 내던져진 아이는 또래들과 어울리지 않고 학교에서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피 흘리는 아버지, 우는 어머니, 주검이 된 자신을 끊임없이 그림으로 그릴 뿐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어느 일요일 만화영화 <가제트 형사>를 보던 중 아이는 “쉬지도 않고 속사포처럼 프랑스어를 쏟아냈다.”
페르시아어에서 프랑스어로 옮겨가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프랑스어를 써야 한다던 부모는 이제 싫다는 아이에게 “페르시아어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강요한다. 몇주간 실랑이 끝에 “집에서는 페르시아어, 밖에서는 프랑스어”로 타협을 보지만, 두 언어와 정체성 사이에서 겪어야 하는 혼란과 갈등이 깨끗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난 어딜 가도 내 나라에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 프랑스에서는 다들 내가 이란 사람이라고 하고 이란에 가면 나를 프랑스 사람 취급해.”
대학 시절 자신의 이중 정체성을 부러워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반박했던 마지디는 26일 방한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뭇 결이 다른 말을 했다. “이란과 프랑스라는 두 정체성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중요한 한 부분이 절단되는 고통스럽고 폭력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두 개 언어로 생각하고 욕도 할 수 있다는 건 풍요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저귀에 비밀 문건을 숨긴 채 아버지의 목말을 탔던 일, 이슬람 교리에 따른 ‘권리’라며 둘째 부인을 갖겠다는 남편에게 반발했다가 매를 맞고 이혼을 당한 사촌, 집 창문을 모두 은박지로 가린 채 “술병과 엑스터시와 코카인”이 난무하는 파티를 벌이는 이란 젊은이들 등의 삽화도 흥미롭다.
마지디는 26일 간담회에서 “이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묘사 때문에 이 소설은 이란에서는 출판 불가 결정이 내려졌고 나 역시 다시는 이란에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며 “이란 여성들의 삶이 극단적이긴 하겠지만 다른 나라 여성들 삶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미투 운동에 연대감을 느끼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재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