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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부정의”

등록 2018-03-29 20:44수정 2018-03-29 20:46

정치-미학 꿰는 사유 펼쳐온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최근작
“시간이 ‘감각적인 것의 나눔’의 핵심”
‘역사적 필연성’의 쳇바퀴 벗어나야
모던 타임스
-예술과 정치에서 시간성에 관한 시론
자크 랑시에르 지음, 양창렬 옮김/현실문화A·2만원

‘정치’와 ‘미학’은 프랑스 출신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78)에게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두 축이라 할 수 있는데, 2000년에 냈던 <감각적인 것의 나눔>(국내에는 <감성의 분할> 제목으로 출간)은 그 독특한 사유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 평가받는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모던 타임스>는 랑시에르가 2014~2015년 사이 발표한 말과 글을 모은 것으로, ‘예술과 정치에서 시간성에 관한 시론’이란 부제에서 보듯 <감각적인 것의 나눔>으로부터 꾸준히 이어온 그의 정치-미학을 다시 한번 가다듬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랑시에르 저작들을 꾸준히 우리말로 옮겨왔던 옮긴이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 이전의 정치 연구와 이후의 미학·예술 연구를 연결하는 마디에 해당한다면, <모던 타임스>는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랑시에르의 예술-정치 연구를 축도(縮圖·압축한 지도로 보여줌)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최근작 <모던 타임스>에서 정치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시간’을 열쇳말로 삼아 다시 가다듬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최근작 <모던 타임스>에서 정치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시간’을 열쇳말로 삼아 다시 가다듬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책은 네 편의 글로 이뤄졌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열쇳말은 ‘시간’ 또는 ‘시간성’이다. 이 논의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는 것은 첫 글 ‘시간, 내레이션, 정치’이다. 여기서 지은이는 “시간과 시간성 범주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불화>(1995)에서 처음 제시하고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 본격적으로 이론화시킨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란 개념은, “공통 세계를 규정하는 동시에 이런저런 주체가 그 공통 세계에 참여하는(몫을 갖는) 방식을 규정하는, 존재하고 보고 사유하고 행위하는 방식 사이의 관계 체계”를 가리킨다. 공존과 배제를 모두 규정하는 이 관계 체계 자체를 문제삼는 데에서부터, ‘몫 없는 자들에게 몫을 갖게 하는’ 정치와 어떤 대상을 식별하는 체계로서 미학을 강조하고 이를 정치의 토대에 심는 랑시에르 특유의 사유가 전개된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최근작 <모던 타임스>에서 정치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시간’을 열쇳말로 삼아 다시 가다듬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최근작 <모던 타임스>에서 정치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시간’을 열쇳말로 삼아 다시 가다듬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왜 시간이 문제가 되는가? 공통 세계를 지각하고 사유할 때, 또 이런저런 주체가 공통 세계에서 점유하는 자리를 규정할 때, 우리는 지금과 이전, 이후를 어떤 허구적인 서사 속에 연쇄시키는 시간의 ‘극작법’에 기대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시간을 과거에서부터 미래로 뻗은 하나의 선으로 인식하고 여기에 인과적인 합리성을 부여하는 허구적인 ‘대서사’ 속에 근본적이고 위계적인 나눔이 있다고 짚어낸다. 단순하게 말해, 한편에 ‘시간 있는 자들의 시간’, 곧 ‘능동적 인간’이 자신의 행위와 앎을 인과적 서사에 맞춰 배치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시간 없는 자들의 시간’, 곧 그저 차례차례 일어나는 사태의 현재 속에서 ‘수동적 인간’이 그저 살아내고 있는 시간이 있다. 이 같은 시간의 나눔에서 발생하는 위계야말로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좌우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강제된 ‘업무/점유’(occupation)는 ‘일’이라는 물질적 구속뿐 아니라, 그가 시공간에 존재하는 방식, 곧 보고 말하고 사유하는 방식까지 부여한다. “착취의 부정의에 예속되는 자들이 겪는 가장 근본적인 부정의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부정의, 시간성 분배의 부정의다.”

특히 ‘역사적 필연성’을 앞세웠던 근대의 시간성은, 소련 붕괴와 전지구화를 거치면서 지배를 강화하는 공식 담론이든 이를 공격하는 비판 담론이든 결국 하나의 동일한 원 안에서 끊임없이 쳇바퀴를 돌도록 만들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공식 담론은 행복을 약속하는 전지구적 질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판 담론은 다가올 파국을 알지 못한 채 그런 질서에 적응해버렸다는 이유로 개인들을 비난하는데, 이들은 ‘지식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시간 있는 자’와 ‘무지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시간 없는 자’를 가르고 그 차이와 간극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별 차이가 없다. 노동법, 연금 체계, 공공 서비스 등 과거 노동자 투쟁을 통해 쟁취해낸 사회적 성취들이 이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특권’으로 공격받는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최근작 <모던 타임스>에서 정치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시간’을 열쇳말로 삼아 다시 가다듬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최근작 <모던 타임스>에서 정치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시간’을 열쇳말로 삼아 다시 가다듬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은이는 이 쳇바퀴에서 빠져나와 ‘시간의 나눔’ 자체를 재편하는 것, 곧 불평등을 무한히 재생산하는 시간성 자체를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단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온 인과론적 시간성과는 다른, ‘순간’에서 비롯하는 새로운 시간성, 곧 ‘해방’의 시간성을 창출해내기 위한 복잡한 게임을 예고한다. 특히 이 복잡한 게임 속에서 집단적 투쟁의 방향을 요약하는 단어는 다름아닌 ‘업무/점유’일 것이라는 지적이 흥미롭다. 지은이 스스로 과거 저작들에서 드러냈듯 19세기 장인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시간(밤)을 점유함으로써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시간의 나눔’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려 시도했다. 20세기 공장 노동자들은 착취 노동의 장소인 공장을 집단 점유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을 발휘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최근 사회운동의 흐름을 보면, 파편화한 일터와 불안정한 노동 등으로 조각난 ‘시간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광장이나 거리를 점유하는 데 나섰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공통의 시간’을 재구축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진 않을까?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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