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식·강국진 지음/부키·1만6800원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중국의 국공내전을 겪고 10대에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20대엔 세계에서 가장 ‘빽’ 있는 나라를 배우고 싶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그곳에서도 베트남전의 참상을 지켜봐야 했다. 전쟁의 아픈 기억은 그로 하여금 40여년간 ‘평화’라는 화두에 매달리도록 만들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를 연구해온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가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와 나눈 대담집 <선을 넘어 생각한다>를 펴냈다. 박 교수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을 비롯해 미국 정치인들과 친분이 깊을 뿐더러 지금까지 북한을 50여차례 방문하며 평양의 속내를 탐구해왔다. 강의실 밖을 넘어 현실 국제정치에도 직접 발을 담그기도 했다. 2009년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 2명의 송환에 관여했고, 정치인, 정부 쪽 관료, 전문가 등이 격의없는 비공식 대화를 나누는 ‘남북미 트랙 II 대화’를 주선했다. 박 교수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자의 질문에 명료한 답을 내놓는다. 북한은 과연 붕괴할 것인가, 북한은 김정은이라는 미치광이가 혼자 지배하는가, 김정일의 선군정치는 군부독재와 같은 뜻인가, 북한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정말 인권의식이 높아서 그런 것일까, 오토 웜비어 사건에서 보듯 북한은 왜 국제사회의 따가운 비난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을 억류할까, 북한은 과연 남한 정부의 대북 지원으로 핵 개발을 한 것인가, 북한 비핵화는 가능한 일인가, 통일은 과연 손해인가 등등. 책을 이루는 열두가지 질문은 ‘꽃봉오리가 맺히는 봄’을 맞아 ‘결실의 가을’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매우 긴요한 질문이다. 이런 도전적인 주제를 앞에 놓고, 일단 박 교수는 북한을 ‘깡패국가’, ‘악의 축’ 으로 조롱·비난하지만 말고 있는 그대로 들여다봐야한다고 전제한다. 언뜻 보면 북한에 대한 과도한 내재주의적 접근방식 또는 온정적 시선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최근 노출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호쾌한 모습이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잔혹한 권력자, 전쟁광이라는 이미지에 균열을 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를 직접 관찰한 박 교수가 보기에, 북한 사회는 체제 정통성에 대한 자신감, 종교적인 분위기가 매우 강한 나라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선상에 시달린 ‘고난의 행군’ 시기도 흐트러짐없이 견뎌왔다. 이때문에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 곧 붕괴할 것이라는 믿음은 망상에 가깝다. 김정은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핵·미사일 개발로 긴장을 최대한 끌어올려 극적 타결을 이루려는 ‘미치광이 전략’에 능통한 인물이고 ‘북한의 덩샤오핑’을 꿈꾸는 야심찬 정치인이라고 그는 판단한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앞에 놓고, 무엇보다도 박 교수는 북한의 안전보장을 핵심에 둬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남북관계 실패는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라는 백일몽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넘어야 할 선’은 70년 가까이 남북을 갈라온 이데올로기의 벽이기도 하고, 점점 이질성이 강화돼가는 남북의 현실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북한은 영원한 주적, 한미동맹은 영원한 동맹’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의 단선적 사고를 꼬집는 것으로도 읽힌다. “통일의 과정은 동질성의 회복이 아니라, 이질성의 포용에 있다”고 말하는 박 교수는 남북 모두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입체적인 현실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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