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책 표지가 너무 밝아 슬프다. 박건웅 작가가 그린 다큐 만화 <그해 봄>(보리 펴냄). 우홍선·김용원·송상진·하재완·이수병·도예종·여정남·서도원 8명은 봄꽃이 흐드러진 1974년 4~5월 ‘어디론가’ 끌려갔다. 1년 새 세번의 재판이 속전속결 진행됐고, 1975년 4월8일 대법원은 피고인도 참석하지 않은 상고심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그로부터 18시간 만에 이들은 당시 서울구치소(서대문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법살인’이라고 불린,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이다. <그해 봄>은 용산 참사, 강정마을, 삼성전자 산업재해, 위안부 피해자, 한국전쟁 등 사회적 이슈들을 동화·만화 형식으로 다루는 출판사 보리의 ‘평화 발자국’ 시리즈의 21번째 작품이다. 박건웅 작가는 사형수 8명의 가족과 지인들을 인터뷰해 행복했던 가정이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어떻게 파괴됐는지 보여준다.
가족들은 이들이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나서야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다는 것을 전해듣고 날마다 찾아갔지만 면회금지로 얼굴 한번 볼 수 없었다. 법정에서도 피고인들은 뒤를 돌아볼 수 없었기에, 고문으로 멍든 시신이 담긴 허름한 관을 받고서야 그리던 남편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간첩 자식”으로 몰려 선생님들의 구박과 친구들의 따돌림에 시달렸고, 부인들은 외판원·가게점원·학습지배달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작가는 흑백만화의 절제된 선으로 이들의 고통을 담담하게 묘사해나간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 전 공포가 뒤섞인 사형수의 마음을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근처 미루나무에 손을 얹는 장면으로 표현하고, 가족 외엔 아무도 마음을 열 수 없었기에 “아픔은 결코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내레이션엔 반으로 뚝 잘린 도마 위 생선을 그려넣었다. “아직까지도 유년 시절의 피가 뚝뚝 흐르는 상처 속에 살고 있다”는 고백은 세계명작단편집에 끼인 단풍잎으로 치환된다.
그럼에도, 슬픔은 독자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엄마,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듣도록 울고 싶어요.” 꿈에서 잠깐 아버지를 만났다가 한밤중 깨어난 송상진의 어린 딸은 엄마 품에 안겨 흐느낀다. 이 책에 유달리 자주 등장하는 장면, ‘그해 봄’ 만개했던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은 곧 한바탕 눈물비로 변해 책갈피에 쏟아진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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