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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 인간의 인생을 사는 데 이십억이면 충분하지”

등록 2018-04-19 19:20수정 2018-04-19 19:53

리셋
조광희 지음/솔출판사·1만4000원

법률가이자 이름난 칼럼니스트로서 영화 제작에도 손을 댔으며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안철수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현실 정치에도 몸담았던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 조광희(사진) 변호사가 이번에는 소설가로 변신했다. 그가 새로 낸 장편 <리셋>은 변호사 강동호를 주인공 삼아 재력과 권력의 카르텔을 고발한다.

아내 살해 혐의로 구속된 친구의 변호를 맡았다가 패소한 강동호 변호사는 죄책감을 안고 미국에서 지내던 중 서울시장 고윤석의 요청으로 귀국한다. 전임 시장이자 고 시장의 대권 경쟁자인 국회의원 민상철의 비리에 관한 제보를 확인해 달라는 것. 비밀리에 조사를 한 결과 민 의원과 부학개발 장수철 회장, 그리고 미래화랑 오 관장 사이의 불법 커넥션이 드러나지만, 그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오히려 강 변호사가 불법 조사 혐의로 피의자로 전락하고 함께 일한 동료들의 안위마저 위협받게 된다….

<리셋>은 정치인과 기업인, 법조인, 언론인 등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 집단의 부끄러운 민낯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장수철 회장이 강동호를 회유하고자 자랑삼아 들려주는 이런 말이 다소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적어도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경험해보니, 한 인간의 인생을 사버리는 데 이십억이면 충분하더군. (…) 이십억은 자네같이 부자는 아닌 엘리트들의 인생에 대한 가격이지. 판사, 검사, 기자, 관료, 정치인 중에서 똘똘한 놈들에게 이십억만 제공하면 그 인간을 좌우할 수 있지.”

실제로 소설에는 장 회장이 ‘이십억’으로 인생 전체를 산 엘리트들이 주변에 포진해 그를 보위한다. 위기에 몰렸던 동호가 극적으로 사태의 진상을 세상에 알리고 민 의원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벌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됨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이라 할 장 회장만은 법망을 피해 도피하는 결말은 돈을 정점으로 한 이 사회의 권력 카르텔이 얼마나 강고한지를 반증하는 셈이다.

“막연하게나마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는 오래됐어요. 하지만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창작의 길은 멀어져갔죠.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작년 장미대선이 끝난 뒤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16일 오후 서울 홍익대 앞에서 만난 조광희 변호사는 ‘소설 외도’에 대해 매우 쑥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과 의욕을 감추려 하지는 않았다.

“제딴엔 다양한 경험을 거쳤고 그러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걸 전달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에세이나 칼럼보다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죠.”

그는 “권력이 나쁜 둔기처럼 도처에 퍼져 있는 복잡한 현대 세계 속에서 자기가 선택한 윤리를 지키면서도 살아남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소설 <리셋>을 요약했다. ‘인간이 과연 윤리에 구속되어야 하는지는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실존적 결단에 의해 윤리를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소설 중반부에서 강동호가 곱씹는 이런 상념이 작가가 설명하는 주제의식과 통한다 하겠다. 실감 나는 법정 다툼 장면에서 법조인다운 전문성이 유감없이 발휘됨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다양성과 내면의 깊이를 묘사하는 솜씨라든가 속도감 있고 세련된 문장은 만만치 않은 작가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영화인에게 도움이 될 법률 지식을 안내한 책자를 제하고는 <리셋>이 첫 책이라는 조 변호사는 다음주에는 그동안 쓴 칼럼과 에세이를 정리한 산문집도 내놓을 예정이다. “앞으로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법정과 에스에프(SF)를 결합한 소설, 그리고 동물해방운동을 다룬 소설을 쓰고 싶다”고 그는 포부를 밝혔다.

최재봉 기자, 사진 솔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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