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는 지금
한국과 미국간의 점증하는 갈등과 반목은 과연 문화적·감정적 차원의 문제인가. 예컨대 최근 미국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말한 사람들이 적지않았다. “한국인들은 미국의 확고한 대한 지원, 특히 한국전쟁 때 한국방위를 위해 수많은 미국인들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 그리고 그 뒤에도 엄청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별로 감사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내에서 반미감정이 강해지고 있는 것은 북한의 위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모르고 고민도 하지 않는 젊은 세대 한국인들의 순진함 탓이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조차 얼마전 그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데이비드 강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는 지난 28일 ‘더 나은 한국정책’이라는 제목의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단언했다. “한-미 동맹간의 그런 문제들은 결코 감정이나 순진함 또는 배은망덕 때문에 빚어진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한반도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과 전략 차이다. 단순화하자면, 미국은 한반도정책의 초점을 전지구(글로벌)적 반테러정책 차원에서 북한 비핵화에 맞추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정전문제와 분단 해소, 곧 민족통일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외교의 최대 관심사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통일을 해서 북한을 역동적인 동아시아지역에 복귀시키느냐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포함해서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전략적 이익을 키우고, 영향력을 유지하며, 장기적 동맹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는 길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북한문제’를 미국 이해에만 매몰된 비핵화 하나로 좁히지 말고 한국인의 최대열망을 수용하는 쪽으로 초점의 범위를 더 넓히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흉내만 내지 말고 진심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남북분단을 해소하고 북한의 동아시아 무대 복귀에 기여하는 길을 함께 찾아나서기만 하면 된다. 그런 전환이야말로 복잡하게 꼬이기만 하는 북한 핵문제도 더불어 해결하는 길이다.
그러지 않는 한, 미국의 오랜 한국 지원과 미국 젊은이들의 숱한 희생조차도 오로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치른 대가일 뿐이라는 차원 이상으로 평가받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정책 전환 요구는 미국이 패전국 일본 대신 그 피해자였던 식민지 한반도를, 오로지 자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마음대로 분단한 원죄에 비춰보더라도 지극히 정당한 것이 아닐까. 전쟁과 분단고착화와 정전문제 따위가 모두 그 원죄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의 바람과는 달리 ‘친미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의 지원과 희생을 모르거나 북한의 위협에 눈감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을 회의하고 그 의도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민이 ‘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미국이야말로 한국민이 ‘반미’하도록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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