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올림피아드의 천재들
스티브 올슨 지음. 이은경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 1만3700원
스티브 올슨 지음. 이은경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 1만3700원
백인 청소년은 왜 수학에서 체면 구길까
2001년 미국 국제올림피아드 음모가 개입한다
백인이 1등 하게끔 채점자 압력
지적 경연의 장 오염시킨 드라마 같은 실화소설
2001년 미국 국제올림피아드 음모가 개입한다
백인이 1등 하게끔 채점자 압력
지적 경연의 장 오염시킨 드라마 같은 실화소설
세계의 수학 영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는 지적 경연의 현장이다.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영재들의 드라마가 되겠는데, 이런 어린 수학자들의 경연에 어른의 정치적 음모가 끼어든다면? 아마도 지적 게임을 다루는 소설로는 제격일 듯하다.
그런데 2001년 미국에서 열린 제42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이런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났다.
미국의 과학저술가 스티브 올슨이 쓴 <수학올림피아드의 천재들>(자음과모음 펴냄)은 그해 수학올림피아드에 참여한 미국 학생대표팀에 얽힌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다룬 실화소설이다. 지은이는 다큐멘터리 성격의 책을 쓰려고 1996부터 주인공 티앙카이 리우를 비롯한 어린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채집해왔다고 한다. 이야기는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공립학교에서 시작해, 2001년 영재들의 각축장인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절정에 이른다.
새너제이 공립학교 4학년생(초등 4년생)인 중국계 미국인 티앙카이는 늘 교실 한 구석에 앉아 조용히 수업을 듣는 말없는 소년이었다. 그늘진 그의 삶에 대전환이 일어난 건 이 학교 수학교사 로렌스 핀 덕분이었다. 수학시간에 1부터 100까지 모두 합한 값을 묻는 느닷없는 물음에, 티앙카이는 ‘1+100’ ‘2+99’ ‘3+98’ 식으로 이뤄진 101이 50쌍을 이뤄 ‘5050’이라는 답을 간단히 만들고, 곧이어 23×3×53×7의 계산을 ‘(2×5)3×(3×7)’으로 바꾸고 다시 ‘103×21’로 단순화해 답 ‘21000’을 맞추는 재능을 발휘했다. 온 세상을 도형과 숫자로 단순화하는 그의 선천적 재능은 수학 영재의 것이었다.
수학교사의 추천을 받아 티앙카이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며 수학 영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4년 뒤엔 미국 대표 학생 가운데 한 명으로 올림피아드에 참여했다. 그는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런 드라마의 전개는 사실 훨씬 더 복잡하다. 티앙카이만의 영재 드라마라면 숫자와 도형의 아름다운 수학적 질서와, 가정불화을 겪은 어린 영재의 좌절과 성공을 담은 영재 성공기 쯤에서 그칠 테지만 여기엔 뜻밖에도 백인우월주의라는 어른들의 정치가 개입한다.
미국 정부 지원 영재교육 백인 위주
청소년 수학 능력에서 세계 상위권에 잘 오르지 못해 종종 자존심을 구기는 미국에선 수학·과학자들 중에 수학교육 개혁과 영재 교육을 표방하고 나선 두 집단이 있었다. 하나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과학 분야의 ‘미국 제일주의 실현’을 목표로 나선 국제수학과학연구회였고, 다른 하나는 이런 국수주의·인종차별 교육철학에 반기를 들고 뛰쳐나와 새로운 수학 영재 프로그램을 운영한 수학자들이었다. 언론매체에선 두 수학자 집단의 경쟁을 흥미로운 기삿거리로 다뤘다. 마치 수학계의 보수와 진보가 대결하는 양상이었다.
두 집단이 각각 운영한 ‘수학캠프’와 ‘수학모임’이라는 영재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학생들 가운데 2001년 올림피아드의 미국 대표팀 6명이 모두 뽑혔다. 그런데 여기에 정말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6명 가운데 3명은 수학캠프 출신이었고 모두 백인이었다. 나머지 3명은 수학모임 참가자였고 모두 황인종, 곧 중국·한국·베트남계 미국인이었다. 이런 사실은 미국 수학계에서 화제가 됐다. 수학캠프와 수학모임의 대결 무대는 올림피아드로 옮겨진 셈이었다.
2001년 83개 나라에서 500명 가까운 수학 영재들이 참여한 국제수학올림피아드는 그해 7월 미국에서 열렸다. 이틀에 걸쳐 치러진 여섯 문제의 시험 장면은 매우 수학적으로, 또한 지적 게임과 같이 그려졌다. 첫번째 문제에서 모범답안을 뛰어넘을 만한 수준의 간결한 문제 풀이로 나아간 티앙카이, 해법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다 시험도중에 잠시 화장실로 가는 순간에 섬광 같은 아이디어를 얻은 이안 레, 자기 답안의 약점을 세련되게 감추며 끝까지 밀고나간 레이드 바튼 등등. 수학 문제풀이 장면을 읽다보면 인생의 어려움을 풀어나가야 하는 우리네 삶의 태도와도 무척 닮았다.
각 나라 대표팀의 코치로 참여한 수학자들이 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장면들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가 과연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채점 과정에 ‘음모’가 개입했다.
채점장에 들어가는 미국 대표팀 코치 티투 박사한테 접근한 국제과학수학연구회 의장인 스타이글러 교수는 미국 대표팀 가운데 백인 학생이 금메달을 따도록, 그래서 미국사회에서 백인의 우월성을 입증해달라고 넌지시 압력을 넣는다. 학생대표 레이드는 이미 4년 연속 올림피아드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고, 이번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면 ‘4년 연속 금메달’의 신화를 백인이 거머질 것이라고. 또 어린 티앙카이가 앞으로 4년 연속 금메달의 신화를 깨지 못하게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게 해달라고.
천재를 못키우는 수학강국 한국
스타이글러는 ‘일그러진 미국사회의 백인우월주의’를 대변하고 있다. “(올림피아드) 참가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을 동양인 녀석들이 차지하고 있었어요. 백인의 나라 대표로 참가한 황인종은 있어도 황인종 나라의 대표로 참가한 백인은 없단 말입니다. 올림피아드에서 우리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게 무얼 의미합니까?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아마도 과학기술의 주도권이 놈들에게 넘어갈지도 모릅니다.”(290쪽) 음모의 결과는 순수한 지적 대결의 장을 오염시킨 어른들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한국인 독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감초 같은 얘기도 책에 담겼다. 먼저 미국 대표팀에 참여한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신’. 그는 넉살좋고 음악을 좋아하는, 대표팀 안의 낙천적 괴짜 같은 수학자로 묘사됐다. 또 지은이는 소설 속 미국 수학자들의 입을 통해 한국은 “올림피아드에서 1, 2위를 다투는 수학 강국”이지만 “그들은 ‘수재’를 길러내는 데는 뛰어나지만 ‘천재’를 키우는 데는 서툽니다”라는 평을 들려준다. 이 실화소설은 기초학문인 수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과학 영재들을 우리사회가 어떻게 보살필 것인지를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