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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제주에서 오키나와 역사와 문학을 말하다

등록 2018-05-03 20:29수정 2018-05-04 16:47

미군 집단강간 사건 다룬 장편소설
‘기억의 숲’ 작가 메도루마 집담회
오키나와말은 제주말로 옮겨 번역

기억의 숲
메도루마 슌 지음, 손지연 옮김/글누림·1만3000원

오키나와 소설가 메도루마 슌(58)은 2000년대 이후 한국에 집중 소개되고 있다. 2008년 소설집 <혼 불어넣기>가 번역 출간된 것을 필두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을 표제로 삼은 소설집 <물방울>(2012), 오키나와 현대사와 자기 문학의 관계를 설명한 에세이 <오키나와의 눈물>(2013), 그리고 1983년 등단작을 표제로 한 소설집 <어군기>(2017)가 차례로 한국어본을 얻었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의 오키나와 여성 집단 강간 사건을 다룬 장편 <기억의 숲>이 최근 번역되었으며, 또 다른 장편 <무지개 새>와 소설집 <나비떼 나무> 역시 출간을 앞두고 있다. 가히 ‘메도루마 현상’이라 이를 법한 이런 관심과 열기의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달 29일 제주대에서 열린 집담회 ‘메도루마 슌 소설의 힘, 오키나와 문학의 세계성’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제주대 인문대학에서 열린 집담회는 경희대 일본어학과와 제주대 국문과, 그리고 오키나와문학연구회(회장 손지연 경희대 일본어학과 교수)가 함께 주최했다. 2016년에 발족한 오키나와문학연구회는 김재용 원광대 교수와 김동윤 제주대 교수, 고명철 광운대 교수 등 8명이 회원으로 있으며 <오키나와 문학의 힘>을 비롯한 합동 연구서를 내고 오키나와 현장 답사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4월29일 오후 제주대 인문대 문화원형체험관에서 열린 집담회에서 <기억의 숲>의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이 발언하고 있다.
4월29일 오후 제주대 인문대 문화원형체험관에서 열린 집담회에서 <기억의 숲>의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이 발언하고 있다.

29일 오후 2시부터 5시30분까지 열린 집담회는 한시간 남짓에 걸친 메도루마의 열띤 강연에 이어 <기억의 숲>을 중심으로 한 그의 문학 세계와 오키나와 현실에 관한 질의응답 순으로 펼쳐졌다. <기억의 숲>은 메도루마의 어머니가 살던 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작가는 소설 속 피해자인 열일곱살 소녀 사요코를 중심으로 삼되 사요코 자신의 목소리는 괄호 치고, 미군을 작살로 응징한 사요코의 이웃 청년 세이지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을 차례로 화자로 내세워 사건의 본질과 그 뒤의 파장을 다각도로 그려 보인다. 특히 표준 일본어와 크게 다른 오키나와어를 적극 활용한 점이 눈에 뜨이는데, 한국어판에서는 오키나와말을 모두 제주말로 바꾸는 ‘번역적 실험’을 감행했다. 이런 식이다.

“자기네 섬 여자가 당하고 있는데 어떵허연 침묵허멍 보고만 있고 막지 않은 거야, 어떵허연…”

4월29일 오후 제주대 인문대 문화원형체험관에서 열린 집담회에서 <기억의 숲>의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이 발언하고 있다.
4월29일 오후 제주대 인문대 문화원형체험관에서 열린 집담회에서 <기억의 숲>의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이 발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메도루마는 “지금은 오키나와에서도 40대 이하 젊은 층은 오키나와말을 거의 알지 못한다”며 “소수언어이자 위기언어이기도 한 오키나와어를 지킨다는 의미 말고도, 일본어와 격투를 하면서 오키나와어를 활용하는 것은 이런 소재와 주제의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기억의 숲>은 가해자 미군의 아들과 손자를 등장시켜 베트남전쟁과 9·11 테러 역시 다룬다. 오키나와 출신 소설가에게 보낸 영상 편지에서 그의 대학 친구인 일본인이 하는 말에서는 오키나와전투에서 9·11로 이어지는 역사의 맥락이 이렇게 요약된다.

“(9·11에 관해)만약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일본에 있다면, 60년 전 미군을 찔렀던 섬 남자가 아닐까…, (…) 내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세이지의 작살 촉으로 만든)펜던트를 보고 있으면 문득 작살 촉의 형상이 빌딩으로 돌진해 가는 비행기의 모습과 겹쳐져 보이는 거야.”

메도루마는 류큐대학에 입학한 1979년부터 40년째 미군 기지 반대 싸움을 벌여오고 있다. 지금도 매일 아침 5~6시에 일어나 카누를 준비해서 해상 저지 운동을 하러 나가서는 밤 11시에 돌아오는 생활의 연속이다. “집에 돌아오면 책을 읽을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소설을 쓸 여유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학생 시절부터 그런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기억의 숲> 같은 작품은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집담회에 앞서 강정 미군기지 반대 싸움 현장을 찾아 문정현 신부 등을 만나고 온 그는 “현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미 기지가 만들어진 상황에서 반기지 운동을 하는 게 매우 괴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미 만들어진 군항을 어떻게 민간이 쓸 수 있는 항구로 만들지를 고민하면서 싸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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