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롭 루이스 지음, 김영진 옮김/시공주니어(1997)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무리 중에 누가 힘이 센지를 제일 먼저 파악하고 맞추어 행동한다. 어리고 약한 아이들은 이 점에서 더 본능적이다. 누가 만만하고 무서운지를 대번에 알아차린다. 아이를 혼내고 벌주는 엄마나 교사는 두려운 대상이다. 병원이나 미용실도 죽어라 싫어한다. 성인 남자가 되어서도 한사코 병원이나 치과에 가기를 두려워하며 차일피일 미루는 이들이 많은데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싶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옛날처럼 집에서 이를 뽑지 않으니 젖니가 빠지는 시기에 아이들은 치과에 가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린이책에서 치과 의사가 등장해 골탕을 당하면 당할수록 아이들은 환호한다. 윌리엄 스타이그의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에서도 동물들의 이를 치료해주는 작은 생쥐 의사는 뜻하지 않은 곤경에 처한다. 치료를 받으러 온 여우가 치과 의사를 잡아먹을 궁리를 하며 입을 쩝쩝 다신다. 아이들에게는 통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영국 작가인 롭 루이스의 <이 고쳐 선생과 이빨투성이 괴물> 역시 아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치과 의사 이야기다. 훌륭한 치과 의사로 명성이 자자한 이 고쳐 선생님에게는 유일한 단점이 있다. 거절을 하지 못한다는 것. 해서 사육사가 동물 한 마리가 치통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를 못한다며 데려오겠다고 하자 덜컥 승낙한다. 문제는 그 동물의 이빨이 만 개나 된다는 것! 이 고쳐 선생은 그 동물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이빨이 그렇게 많다면 분명 입이 엄청 클 것이고, 그렇다면 덩치는 얼마나 클 것인가. 치통이 심하다니 통증 때문에 병원에서 난폭하게 굴 수도 있다. 이 고쳐 선생이 동물 입 속으로 들어가 마취를 시키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그동안 이가 아파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그 동물이 이 고쳐 선생님을 제일 먼저 잡아먹으려 할지도 모른다. 이 고쳐 선생은 이제 이빨이 만 개인 괴물을 맞을 준비를 한다. 치료할 때 입을 갑옷을 사고, 자동차 문짝으로 진료실을 무장하고,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먹이로 줄 암소까지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제 소문은 온 마을에 퍼져 동네 사람들까지 들썩거린다. 과연 이빨이 만 개인 동물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공룡이나 로봇 같은 장난감을 좋아하는 시기가 있다. 특히 남자아이를 둔 부모들은 왜 그렇게 공룡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을 쓴 서천석은 아이들은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공룡처럼 힘이 세어진 듯 여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힘이 센 무엇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기 내면의 힘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골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그가 가진 힘과 권위를 무너뜨리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사, 엄마, 치과의사가 위험에 처하는 책은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최고로 재미난 책일 수밖에 없다. 7~9살.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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