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성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LGBT, 특히 게이에 대한 전지구적 보고서
프레데리크 마르텔 지음, 전혜영 옮김/글항아리·2만5000원
신가족의 탄생-유별난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이야기
친구사이+가구넷 지음/시대의창·1만6800원
오롯한 당신-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
김승섭·박주영·이혜민·이호림·최보경 지음/숨쉬는책광장·1만5000원
"후안 카를로스, 당신이 게이라는 건 문제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이렇게 지으셨고,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며, 나도 개의치 않습니다. 교황도 당신 그대로를 사랑합니다. 당신은 지금의 자신에 행복해야 합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칠레의 한 동성애자에게 비공개 면담에서 했다는 발언이 뒤늦게 유럽 언론들의 보도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에 포용적 태도를 내비친 게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3년에는 “만일 동성애자인 사람이 선한 의지를 갖고 신을 찾는다면, 내가 어떻게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0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교황의 이번 발언은 동성애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성적 지향성으로 인정하는 데 한층 더 다가선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2017년 7월 ‘제16회 퀴어문화축제’가 벌어진 서울시청 광장에서 참가자들이 동성애 반대 집회 시민들에게 영어로 ‘사랑이 혐오를 극복한다’라고 쓴 손팻말과 함께 무지개색 깃발을 펼쳐보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17년 7월 ‘제16회 퀴어문화축제’가 벌어진 서울시청 광장에서 동성애 반대자들이 영어로 ‘동성결혼 안돼’라고 쓴 팻말을 들고 맞불집회를 하는 가운데 한 성소수자 커플이 키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시대의창 제공
아직은 ‘동성애=비정상’이란 편견과 ‘이상한 정상가족’ 신화가 우세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바뀌고 있다. 나라 안팎의 성 소수자, 정확히는 성적 다양성 보유자들의 실태와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가정의 달’ 5월에 한꺼번에 출간된 건 ‘우연 같은 필연’일까.
프랑스 사회학자 프레데리크 마르텔가 쓴 <같은 성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2017)는 원제가 <동성애자들의 긴 행진>이다. ‘LGBT, 특히 게이에 대한 전지구적 보고서’라는 번역서 부제가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지은이가 8년간 유럽, 미주,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 50여개국을 다니며 레즈비언(L)·게이(G)·양성애자(B)·트랜스젠더(T)와 정치인, 사회운동가 수백명을 인터뷰하고 그 나라 성 소수자들의 실태를 파악한 현장 기록이다. 지은이가 전하는 세계 성 소수자 인권은 뿌듯한 성취와 험난한 과제, 낙관적 미래와 암울한 현실이 공존한다.
세계 최초로 성 정체성을 평등의 조건으로 명시한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다.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다 30년 가까이 감옥에 갇혔던 넬슨 만델라가 1994년 이나라의 첫 흑인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맨 처음 한 일이 온갖 차별법 폐지였다. 동성애 차별도 포함됐다. 변호사 출신인 만델라가 중용한 흑백혼혈 동성애자인 에드윈 캐머런 판사는 “동성애는 ‘아프리카의 전통’에 위배되는 행위를 허용받고자 함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압되어온 성 정체성의 또다른 형태를 인정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인종·언어·문화가 워낙 다양해 ‘무지개 나라’로 불리는 남아공에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이 아름답게 펄럭였다. 앞서 1989년 덴마크는 세계 최초로 동성간 ‘시민 결합’을 인정했고, 2001년에는 네덜란드가 동성 결혼을 처음으로 합법화했다. 지금까지 동성결혼을 인정한 나라는 23개국에 이른다.
2016년 7월 서울에서 동성 결혼식을 올린 남성 커플인 플플달 제이(왼쪽)와 크리스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대의창 제공
2015년 5월17일 서울 성북구의 성소수자 연대모임 성북마을무지개의 참가그룹인 성북무지개행동 회원들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T) 행사에 참가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시대의창 제공
반면, 종교적 금기나 보수 성향이 강한 나라일수록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핍박은 더 참담하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선 이슬람국가(IS)가 동성애를 병으로 여기며 전멸시키려 했다. 신정일치 체제인 이란에선 2015년 한 해에만 977명의 동성애자가 강간이나 마약 혐의를 덮어쓰고 교수대에 매달렸다.
대다수 국가는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다. 지은이가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25살 청년 궈쯔양은 ‘퉁즈(TONGZHI)’라는 영문 대문자가 무지개색으로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한자로 ‘동지(同志)’인데, 중국 동성애자들끼리 서로를 식별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은어다. 궈쯔양은 “공산주의 나라인 중국은 동성애에 공개적으로 찬성하지 않지만 반대하지도 않는다”며 “이 곳에서 동성애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 관심 밖의 존재”라고 말했다.
2008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아르헨티나 대표가 ‘인권, 성적 지향성, 젠더 정체성에 관한 선언문’을 낭독했다. 표결을 통한 ‘채택’이 아니라 ‘낭독’이란 점에 주목하자. 선언문의 발제는 유럽연합(EU)을 포함해 66개국의 찬성표를 얻었다. 선언문이 낭독된 직후, 총회장 옆 빈 강당에선 다른 59개국을 대표해 시리아가 ‘성·젠더 정체성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나머지 68개국은 ‘선언’과 ‘반선언’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고 ‘기권’했다. 동성애 문제는 국제사회에서도 그만큼 첨예하게 견해가 엇갈린다. 한국은 어느 쪽이었을까? 처음엔 ‘선언문’ 동참 의사를 밝혔다가 반선언 발표 소식에 초심을 잃고 말았다.
지은이는 한국의 동성애 커밍아웃 1호(2000년)인 연예인 홍석천씨를 보러 서울에 오기도 했다.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 <왕의 남자>를 비롯해 동성애 코드가 심어진 대중문화 장르도 눈여겨봤다. 이태원에서 만난 홍씨는 이렇게 말했다. “티브이에 동성애가 자주 나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 한국사회는 가족 중심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 결혼도 할 수 없고 아이도 낳을 수 없는 동성애는 가족의 계보를 단절시키는 행위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의 회원 모임 웹자보. 시대의창 제공
2016년 9월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부근에서 동성애 찬성론자들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무지개색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8년 5월 현재 세계 23개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바로 그런 점에서 <신가족의 탄생>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구넷)이 펴냈다. LGBT+Q(퀴어) 여덟 커플, 한 지붕 열 가족이 모여사는 무지개집 공동체, 성소수자와 비(非)성소수자 주민 공동체인 서울 성북마을무지개 등 모두 10개의 ‘유별난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이야기’(책의 부제)가 펼쳐진다. 이들은 섣불리 ‘가족’을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가 만든 거대한 장벽 속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뿐이다.
플플달 제이(한국 출신)-크리스(뉴질랜드 출신) 커플은 12년 연애 끝에 2016년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린 남성 부부다. 물론 한국에선 아직 법률적 효력이 없다. 플플달 제이는 “법적 결혼제도든 파트너십이든 본인들이 원하는 선택을 하고 함께 한 약속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혼이라는 건 서로의 관계를 확신하고 사람들에게 그걸 당당하게 보여준다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책을 기획한 크리스가 쓴 에필로그의 한 대목이 절절하다. “(인터뷰에 응한) 그들 모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이웃이었다. 그럼에도 ‘정상’ 가족이 아니란 이유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누군가에는 눈엣가시가 되는 현실 역시 뼈저리게 마주해야 했다. (…)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 우리는 존재를 드러내는 일과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서울 은평구 주민과 의료인들이 설립해 운영중인 살림의원은 트랜스젠더와 장애인, 아이 키우는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배려한 화장실을 갖췄다. 숨쉬는책공장 제공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과 교수 연구팀이 트랜스젠더의 의료기관 이용 때 차별 경험을 조사한 설문 결과. 숨쉬는책공장 제공
<오롯한 당신>은 김승섭 고려대 일반대학원 교수(보건과학)가 이끄는 연구팀이 국내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실태, 건강상태 및 보건의료 환경을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로 분석한 책이다. 애초 연구논문에 담겼던 내용을 대중교양서 버전으로 쉽게 풀어낸 이 책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선행연구가 없는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과 연구팀의 무지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이어 성별을 남녀로만 나누는 폭력성과 불합리함, 그에 따른 트랜스젠더의 고통을 응시하고 성별이분법 세계의 균열을 촉구한다. 트랜스젠더의 의료 이용 실태를 파악하고, 병원에서 존중 받으며 안전하게 치료 받을 권리도 강조한다.
책에선 트랜스젠더들의 남모를 고충이 ‘오롯한 목소리’로 들려온다. “수술 없이 성별을 바꿀 수 있다면…”, “(의료적 트랜지션 지식이 없어) 혼자 고민했어요”, “성형외과에 갔더니 (의사가) ‘남자가 그걸 왜 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서울 은평구 주민들이 협동조합으로 설립한 살림의원의 가정의학 전문의와 서울 녹색병원의 산부인과 전문의는 책에서 트랜스젠더 의료 현장의 보람과 어려움, 정책적 과제들을 제시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소수자가 건강한 사회는 모두가 건강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김 교수는 지난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란 저서에서 해고노동자, 직업병 환자, 세월호 생존학생,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피폐한 심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촉구한 바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