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영 지음/푸른역사·2만5000원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등 고대 그리스 비극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그리스 비극’이라는 표현은 익숙하다. 이창동, 박찬욱의 예술영화에서 할리우드 코미디, 이른바 ‘막장 드라마’까지 인간의 욕망과 질투, 복수, 파국 등을 다룬 모든 ‘이야기’의 원류로 그리스 비극을 인용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많은 연구서들이 이같은 그리스 비극의 예술적, 문학적 가치에 주목했다. 역사학자가 쓴 이 책은 예술이 아닌 정치적 컨텍스트로 그리스 비극을 읽는다. 왜 어떤 작품에서는 최고의 영웅이었던 헤라클레스가 다른 작품에서는 미치광이로 그려지고 있는가. 왜 소포클레스나 에우리피데스 같은 작가들은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에 그렇게나 몰두했을까. 작품과 작품을 연결하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 비극이라는 거대한 풍경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이 책의 논지다. 먼저 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서도 최고봉으로 꼽히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탄생한 배경을 보자. 고대 그리스의 맹주였던 테바이는 아테네와 국경을 맞닿은 지리적 조건 탓에 늘 서로 긴장관계였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공연된 것으로 알려진 기원전 436~433년 사이는 이 긴장감이 최고로 고조된 시기였다.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B.C. 431)로 이어진 이 위기국면에서 아테네인들은 “테바이의 왕들과 그 가문에 닥친 신들의 저주와 비극적 상황들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심리적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외교적으로 그들을 공격하고자” 했다.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했던 소포클레스는 여기서 오이디푸스를 끌어내 일찌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등장했던 오이디푸스보다 훨씬 더 비참한 운명의 테바이 왕 오이디푸스를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적대국이었던 테바이를 저주가 가득한 나라로 깎아내리는 한편, 테바이의 대표 영웅 오이디푸스를 아테네 편으로 만듦”으로써 아테네의 번영과 국운을 기원했다. 헤라클레스 영웅담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용됐다. 초기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압도하는 국력을 가졌을 때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영웅인 테세우스보다 스파르타의 시조 헤라클레스를 더 숭배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테네가 스파르타의 적수로 성장했을 때 헤라클레스의 비극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소포클레스는 <트라키스 여인들>에서 헤라클레스를 여자에게 휘둘리는 무절제한 존재로 그렸고, 에우리피데스는 <미친 헤라클레스>에서 광기에 빠져 자식들을 죽이는 잔인성을 부각했다. “헤라클레스의 나약함 및 그의 가문에 내린 저주와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를 수호신으로 받드는 스파르타에 기죽을 필요가 없으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심리적 자신감을 주고자” 했을 거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 비극은 단순한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서사로 풀어낸 국가적 의제에 가까웠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비극’이라는 단어 역시 본래는 지금의 의미가 아니었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비극을 의미하는 그리스 원어 ‘트라고디아’의 뜻은 ‘염소의 노래’다. 염소의 의미를 무엇으로 볼까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지금의 ‘비극’이라는 뜻보다는 고대 그리스에서 염소를 제물로 바치던 제사의 신이었던 ‘디오니스소 신에게 바쳐진 노래’로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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