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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액자에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다니

등록 2018-05-24 19:48수정 2018-05-24 20:31

액자-사물들의 미술사 1
이지은 지음/모요사·1만6800원

미술관에 있는 명화를 보면서 그림의 테두리를 감싸는 액자에 관심 가져본 적 있는가.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관람객은 물론 학계도 주목하지 않던 ‘액자’를 탐구했다. 사소해 보이는 액자의 역사를 추적하며 그림 바깥에서 펼쳐진 미술사를 건져 올리는데, 그 이야기가 풍성하고 묵직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과 생애는 누구나 알지만, 그가 액자를 중요시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1885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림을 ‘금색 액자’에 걸어달라고 했다. 정직하게 양식을 구해 집에서 저녁을 먹는 농민들을 그린 고흐는 미처 화폭에 담지 못한 식탁 옆 화덕의 온기를 액자로 전하려 했던 것. 고흐를 비롯한 피사로, 고갱 등 인상파 화가들에게 그림은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하지만 그림보다 튀어나오고 화려한 전통 액자는 현실과 그림(가상)을 구분했다. 그들은 새로운 액자를 통해 그림을 가상에 가두지 않고 현실에 풀어놓으려 했다.

중세시대 성당의 제단화가 박물관 전시용으로 바뀌면서 그림의 패널이 쪼개지는 과정은 서양사의 굴곡을 드러낸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루벤스의 24점 연작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가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17세기 루벤스가 뤽상부르 궁전의 갤러리 전체를 액자로 삼고자 했던 의도와 맥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발로 뛰며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풀어가는 액자 이야기는 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 책은 사물에 담긴 고유한 역사와 의의를 발굴하기 위한 ‘사물들의 미술사’ 시리즈의 첫 권이다. 이후 의자, 조명, 화장실 등을 주제로 책을 낼 예정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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