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여성들의 현실을 다룬 짧은소설집 <그녀 이름은>을 낸 작가 조남주. “내 소설을 두고 문학적이지 않다거나 르포 같다는 말도 많이 하지만 이런 문학, 이런 소설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려 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다산책방·1만4500원
“<82년생 김지영>을 내고서 저도 짐작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독자도 많이 만났고, 칭찬과 응원만큼 비난도 많이 받았어요. 어쨌든 그 책은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저라는 사람에게 어떤 계기가 된 책이에요. 제 삶에서 ‘돌아갈 수 없는 지점’ 가운데 하나가 된 것 같아요.”
2016년에 나온 <82년생 김지영>은 작가 조남주에게 ‘인생의 책’이 되었다. 그 책을 내기 전에도 그는 2011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귀를 기울이면>의 작가였지만, 그 책 이후 그는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가 되었다. 그것은 영광일까 족쇄일까. 새 소설집 <그녀 이름은>을 낸 조남주를 24일 서울 합정동의 한 북카페에서 만났다.
“<82년생 김지영>이 영광인 건 맞아요. 그런데 그 때문에 제가 크게 제약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독자들 쪽에서는 그 책을 쓴 작가에게 기대하는 이야기가 있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꼭 그런 주제나 소재 안에만 머무를 수는 없고 그러지도 않을 거예요. 소설은 계속 쓰겠지만, 전에 썼던 책이 앞으로 내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는 그럴 수 있고 그래야겠지만, <그녀 이름은>은 여전히 ‘김지영’의 자장 안에 있는 책이다. 에필로그를 포함해 이 책에 묶인 28개 짧은 이야기는 모두 지금 한국 사회의 여성을 말한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이라는 개인과 그 주변 사람들 이야기로 응축되었던 한국 사회 여성의 현실이 이 책에서는 연령과 계층을 달리하는 28명 여성의 이야기로 확산되었다고나 할까. 응축이든 확산이든,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생리대 값이 없어서 일주일 동안 결석을 해야 했던 중학생(‘공전 주기’), 직속 상관의 성희롱과 그를 감싸는 조직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공기업 직원(‘두 번째 사람’), 회사와 사회의 편견에 시달리는 임신부(‘인터뷰-임신부 이야기’), 간섭이 심한 시어머니와 우유부단한 남편에 지쳐 이혼을 택한 주부(‘이혼일기’) 등 작가는 사회 곳곳에 만연한 성 차별과 폭력의 현실을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사드 배치에 맞서 싸우는 소성리 할머니(‘할매의 다짐’),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본관 점거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다시 만난 세계’), 십수년째 해고 무효 투쟁을 이어오는 케이티엑스(KTX) 승무원(‘다시 빛날 우리’)처럼 첨예한 싸움의 현장을 지키는 여성들도 있지만, 이 책에서 좀 더 인상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평범한 여성들이 수행하는 일상 속의 싸움이다. 가령 ‘인터뷰-임신부 이야기’에서, 아기침대에서부터 젖병소독기까지 책 한쪽을 꽉 채우며 나열되는 출산 준비물의 목록은 임신과 출산 및 육아에서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하중을 짐작하게 한다. 불이익과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성희롱에 맞서 싸우는 여직원, 회사의 압박과 동료들의 몰이해에도 굴하지 않고 육아휴직을 쟁취해낸 임신부 등은 자신의 싸움이 지니는 공시적·통시적 파급력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음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가 신작 소설집 <그녀 이름은> 출간을 맞아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다산북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제가 딸로, 여학생으로, 여자 직원으로, 며느리로 살면서 극단적이거나 범죄에 해당하는 일을 겪지는 않았지만, 기회를 제한 당하고 위협을 느끼거나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경험은 많이 했어요. 제 딸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달라졌으면 합니다. 그걸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 글을 쓰는 것이라 생각해요.”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을 챙기느라 글 쓸 시간을 충분히 내지 못한다는 그는 그럼에도 하반기에 네번째 장편을 출간할 계획이며 또 다른 장편 역시 절반 정도 썼다고 밝혔다.
“제 독서 체험을 돌이켜보면, 책 읽는 일이 내 삶과 연결될 때 희열이 느껴졌어요. 내가 지닌 문제의식을 환기시키거나, 잊고 있던 경험을 되살리거나, 쓰고 싶고 말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이 기억에 남아요. 저도 그런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도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라 느끼고, 자신의 경험과 주장을 많이 확인할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어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