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등단 50돌 맞은 ‘오월 광주’ 김준태 시인
1948년생인 김준태 시인은 올해 만으로 칠순을 맞았다. 1969년 등단했으니 문단 경력이 햇수로 50년에 이른다. 1980년 5·18 광주의 죽음과 부활을 노래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로 잘 알려진 그가 새 시집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도서출판b)를 5월18일에 맞춰 내놓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를 지난 29일 서울 관악구 난곡로 출판사에서 만났다.
“제가 실제로 열한살짜리 쌍둥이 할아버지입니다. 허허.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자주 보는 편이에요. 키우면서 보니 쌍둥이들은 이상하게도 서로를 챙기더군요. 동생한테 빵을 주면 그 동생은 형을 생각하고, 형을 꾸짖으면 동생이 먼저 울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번 시집 표제작은 그런 쌍둥이의 생리를 통해 분단 극복과 통일 염원을 노래한다.
“한 놈을 업어주니 또 한 놈이/ 자기도 업어주라고 운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두 놈을 같이 업어주니/ 두 놈이 같이 기분 좋아라 웃는다/ 남과 북도 그랬으면 좋겠다.”(‘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전문)
책 맨 앞에 실린 시 ‘서울과 평양 사이에’를 비롯해 시집에는 통일을 지향하는 작품이 여럿 들었다. 시집 원고를 넘긴 것이 4·27 남북정상회담 훨씬 이전이었음에도 머리말에서는 “우리 민족의 문제를 보다 능동적으로 평화적으로 풀어가는 역사적 찬스”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제 평생의 화두가 생명과 평화와 하나됨입니다. 할아버지는 징용으로, 아버지는 징병으로 일제 전쟁터에 끌려갔다 돌아오셨어요. 아버지는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제가 세살 때 돌아가셨고, 저는 할머니 젖을 먹고 자랐지요. 그런 저도 베트남전에 다녀오고, 5·18을 거치면서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어요. 그런 제 경험을 놓고 볼 때, 이 땅의 모든 비극은 분단에서 왔다고 생각해요.”
새 시집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쌍둥이 모습 통해 통일 염원 노래해
‘세월호’ 영혼 달래는 14쪽 장시도 “이 땅의 모든 비극 분단에서 비롯
시인은 총을 꽃으로 만드는 존재” 그는 “한반도에는 세계의 모든 아픔이 압축되어 있다”며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렛대 외교를 잘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밖에서 남녘땅 닭이 쪼고/ 안에서 북녘땅 닭이 쪼니/ 노오란 봄병아리가 나온다”는 자신의 시 ‘좋다, 줄탁동시(?啄同時)라!’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저는 지금이 ‘통일과정원년’이라 봅니다. 0.5퍼센트는 벌써 통일이 됐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5·18 참상을 고발하고 싸움과 부활의 의지를 노래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한 시대의 기록이자 격문, 통곡이자 노래로서 숱한 이들의 가슴을 적시고 데웠다. 당시 광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였던 그가 <전남매일신문> 편집국장 대리였던 소설가 문순태의 청탁을 받고 불과 한시간 반 만에 써내려간 109행짜리 이 시 때문에 그는 한달 가까이 도망을 다녔고 수사기관의 조사 끝에 학교도 그만두어야 했다. “그때는 광주가 바깥 세계로부터 봉쇄되었고 ‘광주’의 진실이 왜곡되었을 때였어요. 어떻게든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중요했던 때였죠. 저는 무신론자입니다만, 그 시를 쓸 때 제게 하느님이 왔다고 생각해요. 그 하느님은 로고스이기도 하고 한울림이라 할 수도 있겠죠. 저는 그때 임신부가 목이 잘려 죽고, 복부에 정통으로 총을 맞아 죽은 청년들의 주검도 여럿 봤어요. 지금도 금남로를 지날 때면 꽃 한 송이를 들고 가요. 그 시는 아무래도 귀신들이 내 몸속에 들어와서 쓰게 한 것 같습니다.” 새 시집에는 ‘봄, 금남로에서’라는 시도 있지만, 14쪽에 이르는 장시 ‘Requiem(레퀴엠), 세월호’가 단연 눈에 뜨인다. 광주의 원혼을 위무했던 시인이 이제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을 다독이고 있는 것. 그는 “죽은 혼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일으켜 세우고자 쓴 시”라며 “시인은 총을 꽃으로 만드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김준태 시인.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쌍둥이 모습 통해 통일 염원 노래해
‘세월호’ 영혼 달래는 14쪽 장시도 “이 땅의 모든 비극 분단에서 비롯
시인은 총을 꽃으로 만드는 존재” 그는 “한반도에는 세계의 모든 아픔이 압축되어 있다”며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렛대 외교를 잘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밖에서 남녘땅 닭이 쪼고/ 안에서 북녘땅 닭이 쪼니/ 노오란 봄병아리가 나온다”는 자신의 시 ‘좋다, 줄탁동시(?啄同時)라!’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저는 지금이 ‘통일과정원년’이라 봅니다. 0.5퍼센트는 벌써 통일이 됐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5·18 참상을 고발하고 싸움과 부활의 의지를 노래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한 시대의 기록이자 격문, 통곡이자 노래로서 숱한 이들의 가슴을 적시고 데웠다. 당시 광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였던 그가 <전남매일신문> 편집국장 대리였던 소설가 문순태의 청탁을 받고 불과 한시간 반 만에 써내려간 109행짜리 이 시 때문에 그는 한달 가까이 도망을 다녔고 수사기관의 조사 끝에 학교도 그만두어야 했다. “그때는 광주가 바깥 세계로부터 봉쇄되었고 ‘광주’의 진실이 왜곡되었을 때였어요. 어떻게든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중요했던 때였죠. 저는 무신론자입니다만, 그 시를 쓸 때 제게 하느님이 왔다고 생각해요. 그 하느님은 로고스이기도 하고 한울림이라 할 수도 있겠죠. 저는 그때 임신부가 목이 잘려 죽고, 복부에 정통으로 총을 맞아 죽은 청년들의 주검도 여럿 봤어요. 지금도 금남로를 지날 때면 꽃 한 송이를 들고 가요. 그 시는 아무래도 귀신들이 내 몸속에 들어와서 쓰게 한 것 같습니다.” 새 시집에는 ‘봄, 금남로에서’라는 시도 있지만, 14쪽에 이르는 장시 ‘Requiem(레퀴엠), 세월호’가 단연 눈에 뜨인다. 광주의 원혼을 위무했던 시인이 이제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을 다독이고 있는 것. 그는 “죽은 혼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일으켜 세우고자 쓴 시”라며 “시인은 총을 꽃으로 만드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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