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휴혼 중입니다박시현 지음/은행나무·1만3000원
“나는 휴혼을 꿈꾼다. 나의 집 남편 집이 따로 있되, 정서적이고 기능적인 관계는 부부의 그것과 같다. 각자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삶의 형태를 보존하면서, 서로의 안부와 안녕을 궁금해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진정으로 반가워하는 삶.”
‘졸혼’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단어 ‘휴혼’에 대한 저자의 정의는 이렇다. ‘이러려면 왜 결혼해?’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이어지면서 양 다리에 의무와 책임만 무겁게 매달고 걷는 듯한 기분을 종종 느끼는 이들에게 ‘휴혼’은 한번쯤 해보고 싶은 매력적 제안이다. 이러한 가족형태도 실존한다. LAT(Live Apart Together)족은 우리 말로 해석하면 ‘따로 또 같이’ 사는 부부로 영국의 커플 10%가 이런 삶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렇게 휴혼을 꿈꾸던 저자는 지금 휴혼 중이다. 처음 그가 내린 정의만 보면 마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처럼 전위에 선 자유인의 철학적 결정 같지만,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는 결혼은 지독하고 때로 징글징글한 현실이다. “영혼의 주파수가 맞는 남자”와 불붙은 사랑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결혼 5년 만에 경찰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지경의 다툼이 벌어지고 별거, 이혼, 소송, 친권, 양육권 등의 단어를 남발한 뒤에야 도착한 ‘결혼 휴식’의 과정을 저자는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많은 커플들이 그렇듯 저자 부부도 서로 다른 점에 끌려 결혼까지 이르렀다. 남편은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라 가족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지은이는 십대 때 부모의 결별로 일찍 정서적으로 독립해 도전하기를 좋아했다. 처음에는 서로를 보완할 것 같던 다른 점들이 반복되는 일상과 고단한 육아를 이어가면서 서로에게 칼이 되어 날아왔다. ‘그만 살자’와 ‘다시 잘해보자’를 반복하며 집안의 공기가 삭막해져가던 어느날, 부부는 마지막 부부 싸움을 했다. 예전에는 혀짧은 소리로 엄마 아빠를 말리거나 울던 아이가 이날은 부모의 싸움을 쳐다보다가 잠이 든 걸 알게 됐을 때, 지은이는 휴혼을 결심했다. “부모의 싸움에 적응한 듯한 아이의 모습은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다. 우리 부부는 결정했다. ‘합리적인 헤어짐’을.”
그런데 왜 이혼이 아니라 휴혼일까, 휴혼은 별거와 다른 건가? “이혼 이야기가 나오면서 심장을 도끼로 찍어내는 듯한 비수를 서로 꽂아댔지만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건 상대에 대한 마음이었다.” 아무리 원망스러워도 남편에 대한 신뢰와 애틋한 마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남편은 결혼생활 동안 그 자신을 위해 투자한 건 겨우 자동차 광택제였을 정도로 가족에게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휴혼은 서로가 맞지 않는 부분, 고정관념으로 짜여진 역할분담 등을 피해가면서도 상대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 같이 아이를 키우는 동지애까지 폐기하고 싶지 않은 저자의 선택이었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결혼한 여성의 자립을 매우 구체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독립을 결심했을 때 저자는 “서른네 살에 스물네 살로 돌아왔”다. 결혼생활 동안 자신을 위한 돈을 모으지 못했기에, 자립의 첫번째 조건인 ‘주거 독립’을 하기 위해선 보증금 백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집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5년간의 경력 단절과 막막한 생계로 그는 인터넷에서 ‘연탄자살’을 검색하게 될 정도로 내몰렸다. 하지만 세면대가 없는 화장실, 현관에 서서 설겆이를 해야 하는 싱크대 등을 둘러보며 그는 오히려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게 되었다. 이혼이 아닌 휴혼을 선택했듯이 끊임없이 차선책을 모색해가며 그가 원하던 도전하는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주중에는 남편이 아이를 돌보고, 주말에 아이를 데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겪었던 다양한 일들과 감정들은 그가 휴혼을 꿈꿀 때 예상하지 못했던, 한 부모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프롤로그에서 “휴혼을 권하는 책이 아니”라고 말했던 지은이는 8개월의 시간을 보낸 뒤 “휴혼을 권한다”고 말한다. “자녀에게 손이 덜 간다고 판단할 때, 부부가 의도적으로 휴혼을 통해 자기 밥그릇만큼의 인생만 책임져보는 것, 결혼의 ‘갭 이어’(gap year·안식년) 기간으로서 모두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시간이라 믿는다. 떨어져 나와 한 인간으로 자립하여 살아보기, 고되더라도 노동자 주체로 살아볼 것을 권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