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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랩 같은 동화

등록 2018-06-14 19:36수정 2018-06-14 20:11

[책과 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주병국 주방장
정연철 지음, 윤정주 그림/문학동네(2010)

정연철 작가의 청소년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십대들 말투가 날것 그대로 담겨 있어 적잖이 당황했다. 예를 들어 “쌩까지 말고 좀 도우지”, “태용이가 꼬시면 넘어온다에 오른쪽 XX 건다.” “헐, 대박 꿀잼!” 같은 소위 비속어가 그득했다. 갑자기 중학생들이 가득한 만원버스에 타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십대들에게 입에 착착 감기는 자신들의 언어로 쓰인 글, 중고생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풀어낸 글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꼰대’들의 잔소리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랩이 좋은 십대들에게 이선희와 이문세의 노래가 최고라고 고집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는 작가가 이런 직설 화법을 소설에 들여놓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교과서에 실린 위대한 문학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푸대접을 받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주병국 주방장>은 작가의 첫 작품집으로, 앞으로 작가가 보여줄 이 직설화법의 세계를 점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아직 “닥쳐, 개소리 집어쳐” 같은 대화문은 보이지 않지만 문어가 아닌 구어의 세계, 비록 짧고 거칠더라도 살아 있는 말들이 동화 속에 넘실거린다.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이 생생한 말투는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비루한 어른들과 그런 모습을 보고 배운 아이들의 비뚤어진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더없이 적절하다. 한밑천 잡고 싶은 엄마와 스마트폰을 갖고 싶은 딸이 보여주는 위선이나, 약점을 감추고 싶어 상대에게 처절하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는 삐뚤어진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아이들에게 바른말, 고운 말은 약해빠진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현실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아이들도 알아서인지 작가는 섣불리 행복한 결론을 맺지도 않는다.

주방장이 되고 싶어 하는 주병국의 이야기를 담은 표제작 ‘주병국 주방장’은 이 점에서 가장 활기차고 희망찬 이야기다. 병국이가 어른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주방장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시장에서 통닭집을 하는 아빠와 엄마는 아들인 주병국에게 바라는 게 하나 있다. “에오콘 빵빵하게 나오는 동사무소 겉은 데 편하게 앉아서 콤퓨타 뚜드리는 기 장땡”인 동사무소 직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엄마 아빠처럼 입에 풀칠하는 거 걱정 안 하고 얼매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병국이는 싫다. 그렇게 재미없는 일을 할 생각은 없다. 엄마가 “니는 커서 뭐가 될라 카노?” 하고 걱정하지만 병국이도 생각이 있다. 호텔 주방장이 되고 싶다. 하지만 엄마가 쉽사리 요리 학원에 보내줄 리가 없다. 그래서 집이 비어 있을 때마다 친구들을 불러 요리를 하고 반응을 보는 등 실습을 한다. 하지만 들키지 않는다면 병국이가 아니다.

읽는 내내 아주 찰진 경상도 사투리가 랩 못지않은 리듬감을 선사한다. 또 “엄마 맘대로 할라믄 나를 왜 낳았는데”처럼 아이들이 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 못한 속말을 만나는 쾌감이 시원한 동화다. 초등 5~6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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