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무기-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극한 무기의 생물학
더글러스 엠린 지음, 승영조 옮김/북트리거·1만9500원
우아하고 강인한 수컷 엘크의 뿔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 대가는 만만치 않다. 엘크는 자신의 뼈에서 칼슘·인을 뽑아 뿔을 키우기 때문에 계절성 골다공증에 걸린다. 뼈가 약해진 수컷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하다 다리가 부러지기 일쑤고, 발정기가 지나간 뒤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부상이나 기생충 감염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어간다.
40㎝에 가까운 앞장다리하늘소의 앞다리는 압도적인 외관으로 눈길을 끌지만 적과 싸울 때 말곤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날아갈 때 앞다리가 걸리지 않도록 머리 너머로 넘기고 몸통을 꼿꼿이 세워 저속비행을 해야 한다. 한쪽 집게발이 전체 몸무게의 절반인 농게도 무기를 건사하는 일이 힘겹다. 집게발엔 강력한 근육세포가 꽉 차 있기 때문에 집게발이 클수록 에너지 소모가 크고, 거대한 집게발은 먹이활동에 도움이 안 된다.
동물들이 이처럼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극한의 무기’를 장착하게 된 이유는 뭘까. 지난 20여년 동안 아프리카·호주·중남미를 누비며 쇠똥구리 연구를 해온 미국 생물학자 더글러스 엠린은 생태계에서 진행된 무기 경쟁의 비밀을 추적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을 포착한다.
말코손바닥사슴(Alces alces)은 현존 하는 가장 큰 사슴으로 흔히 유럽선 엘크(elk), 북미에선 무스(moose)라고 부른다. 출처 위키미디어
먼저, 무기의 진화가 이뤄진 것은 번식을 위한 투쟁이 거듭되면서 ‘성선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생태적 환경과 전투 양상도 ‘무기의 편익성’에 영향을 끼친다. 가령 노천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쇠똥구리 종의 경우엔 특별한 무기가 필요없지만, 굴을 지키는 쇠똥구리 종들은 대부분 뿔이 있다. 이들은 국지적이고 한정적이어서 경제적인 방어가 가능한 자원, 즉 굴을 지키기 위해 뿔로 굴벽에 자세를 고정시키고 경쟁자들을 밀쳐낸다. 큰 무기가 작은 무기보다 효과가 크려면 서로 비교되는 무장을 갖추고 1 대 1로 싸우는 ‘전투의 대칭성’을 갖춰야 한다. 이는 인간의 해상 무기경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8세기께 갤리선에 공성추가 추가되자 해상 전투는 마치 보병끼리의 1 대 1 전투처럼 두 척의 배가 맞붙는 양상이 전개됐다. 더 큰 배를 만들기 위한 경쟁은 4000명이 승선해 노를 젓는 길이 126m의 거대한 배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거대할수록 실제 전투에 사용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대부분 농게들의 경쟁은 커다란 집게발을 깃발처럼 흔드는 선에서 정리되는데, 크기만으로도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고, 자신의 자원의 절반이 투입된 값비싼 무기를 매번 휘두르는 건 미련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19세기 영국의 함대가 존재 자체만으로 다른 나라들을 제압한 것처럼, 1980년대 극한의 무기경쟁을 벌인 미국과 소련이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차마 핵버튼을 누르지 못한 것처럼, 무기경쟁은 억제력을 초래한다.
지은이는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에 “매혹됐고” “깜짝 놀랐고”, 그리고 “두려웠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인간을 제외하면 ‘행성 규모의 생명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한 동물은 없었고, “너무 위험해서 사용할 수 없는 무기”도 없었다. 인류는 가까스로 냉전에서 살아남았지만, 냉전의 유산인 핵·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에 처해 있다. 값싸고 파괴적인 대량살상무기가 더많은 정부·조직·개인에게 쥐여질 가능성이 높아지면, 전투의 논리와 이해관계도 변한다. 지은이는 이렇게 단언한다. “또다시 무기경쟁을 하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한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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